데이팅앱에서 시작된 설레는 대화
정○○ 씨(가명, 30대)는 야근이 잦은 회사원이었다. 퇴근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몇 달 전부터 데이팅앱을 켜보는 게 습관이 됐다.
어느 날 프로필 사진이 유독 눈에 띄는 여성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녀는 자신을 "연습생 출신으로 아이돌 데뷔를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대화는 금세 살가워졌다. 그녀는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정식으로 매칭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회원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내에 따라 1만 9,990원을 결제했다. 큰돈은 아니었다. 정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등급이 오를수록 커지는 요구
결제가 끝나자 대화는 한층 더 다정해졌다. 그녀는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며 기대감을 키웠다. 그런데 얼마 뒤 새로운 안내가 도착했다.
"일반 회원으로는 데이트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없어요. 플래티넘 등급으로 올리셔야 저와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정 씨는 등급 업그레이드 비용을 결제했다. 이번에는 앞선 금액보다 훨씬 컸다. 만남이 눈앞에 있다고 믿었기에 망설임은 크지 않았다.
며칠 뒤 또 다른 제안이 왔다. 앱 안에 마련된 "가상 경마 게임"에 참여하면 더 높은 등급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정된 계좌로 입금하면 게임머니가 지급됐고, 몇 차례는 실제로 배당금이 붙는 것처럼 보였다. 정 씨는 조금씩 더 큰 금액을 입금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드러난 조직의 실체
만남은 계속 미뤄졌다. "다음 등급까지만 올리면 된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다. 결국 정 씨는 상대방에게 연락을 끊었지만, 이미 상당한 금액을 잃은 뒤였다.
이후 경찰 수사로 실체가 드러났다. 정 씨가 상대했던 여성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거점을 둔 사기 조직이 데이팅앱을 통해 남성 회원들에게 접근해 결제를 유도한 것이었다. 2024년 7월부터 11월까지 약 4개월간, 이 조직에 걸려든 피해자는 15명, 피해액은 9억 4,458만 원에 달했다.
더 씁쓸한 사실도 있었다. 이 조직에서 여성 행세를 했던 조직원들 중 일부는 애초에 "해외 도박사이트 고객센터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캄보디아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로맨스스캠 조직에 가담하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건너간 이들이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가해자가 된 셈이었다.
2026년 5월, 서울중앙지법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조직원 A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자수해 감형받은 B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고한 피해자를 다수 양산했고 회복이 쉽지 않다"며 엄히 처벌한다고 밝혔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가짜 신분 미끼: 연예인·아이돌 지망생 등 매력적인 신분을 내세워 접근한다.
- 소액 매칭 결제: 첫 만남을 위한 인증이라며 소액 결제를 먼저 유도한다.
- 등급 업그레이드 요구: 만남을 조건으로 더 비싼 등급 결제를 반복 요구한다.
- 가상 게임을 가장한 갈취: 경마 등 게임 참여를 내세워 계좌로 반복 입금을 유도한다.
- 해외 취업사기로 가담자 확보: 고수익 해외 알바로 유인된 인력이 조직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데이팅앱에서 만나기도 전에 결제나 등급 상승을 요구하면 의심하세요.
- [ ] "만남을 위해 등급을 올려야 한다"는 안내는 전형적인 결제 갈취 수법입니다.
- [ ] 앱 내 게임·투자·경마 등에 입금을 유도하면 즉시 중단하세요.
- [ ] 연예인·지망생 등 특별한 신분을 내세우는 상대는 신중하게 대하세요.
- [ ] 해외 고수익 아르바이트 제안은 취업사기·범죄 가담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신중히 확인하세요.
- [ ] 반복 결제를 요구받는다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반드시 상의하세요.
- [ ] 의심스러운 결제 내역은 캡처해 증거로 남겨두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로맨스스캠·결제 갈취 피해가 의심되면 다음 절차를 진행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세요.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전화해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하세요.
- 증거 보존: 대화 내용, 결제 내역, 앱 화면을 캡처해 보관하세요.
-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ECRM(ecrm.cyber.go.kr)에 접수하세요.
다만 이번 사건처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특별법 위반으로만 처벌될 경우, 법원의 배상명령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정 씨와 다른 피해자들도 피해금을 돌려받으려면 별도의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사기 피해는 회복이 매우 어려운 만큼, 예방이 최선입니다.
이 사연은 실제 보도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