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유튜브 쇼츠에서 본 광고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박지훈 씨(가명, 36세)는 여느 직장인처럼 퇴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 쇼츠를 넘겨보며 시간을 보냈다. 2025년 10월 하순, 우연히 넘긴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리플(XRP)을 예치하면 매달 1.5% 확정 수익을 드립니다. 은행 예금보다 낫습니다."
화려한 문구도, 터무니없는 숫자도 아니었다. 월 1.5%면 연 18%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창 맨 위, 의심할 틈이 없었다
영상 속 사이트 이름은 'FxrpNtwork'였다. 실제 존재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플레어 네트워크(Flare Network)'와 그 스테이블코인 'FXRP'를 교묘히 조합한 이름이라는 사실을, 박 씨는 알 도리가 없었다.
포털에 검색해 보니 관련 블로그 글과 지식iN 질문답변, 위키백과 항목까지 줄줄이 걸려 있었다. 검색 결과 맨 위에는 늘 그 사이트가 떠 있었다. '이렇게 정보가 많은데 가짜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대역배우가 연기한 '개발자'
유튜브 채널에는 자신을 '유명 거래소 개발자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남자가 등장했다. 공식 로고를 배경으로 차분하게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모습에, 박 씨는 완전히 믿음이 갔다.
가입 절차를 마치자 약 100명 규모의 카카오톡 단체방으로 초대됐다. 방 안에는 매일같이 수익 인증 캡처가 올라왔다.
"이번 달도 입금 확인했습니다. 다들 축하드려요."
낯선 사람들의 인증 글을 보며 박 씨는 마음을 놓았다. 그는 첫 투자금 2천만 원을 송금했다.
매달 들어오는 돈이 의심을 지웠다
한 달 뒤, 정말로 30만 원 남짓한 수익이 입금됐다. 출금(언스테이킹)을 신청하자 7일 만에 별문제 없이 처리됐다. '유동성도 좋고, 실제로 돈이 들어온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박 씨는 이후 몇 차례에 걸쳐 투자금을 늘렸다. 총 투자액은 9천8백만 원까지 불어났다. 매달 백수십만 원의 수익이 들어올 때마다, 그는 카톡방에 감사 인사를 남겼다.
어느 날 갑자기 막힌 출금
2026년 늦봄, 여느 때처럼 언스테이킹을 신청했지만 이번에는 처리되지 않았다. 카톡방은 잠잠해졌고, 문의 글을 남겨도 답이 오지 않았다.
불안해진 박 씨는 사이트 이름을 검색했다. 그제야 진실을 마주했다. 경찰이 조직적인 가상자산 투자 사기 일당을 검거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이트를 운영한 것은 친구 사이인 20~30대 4명. 그중 한 명은 유튜브 영상 속 '개발자'를 연기한 대역배우였다.
"그 사람이 진짜 개발자가 아니라 배우였다니,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173억 원 동결, 그러나 완전한 회복은 아니다
경찰은 검거 사흘 만에 피해 자금 중 상당액을 리플로 동결했다고 밝혔다. 전체 피해액 273억 원 가운데 동결된 비율은 3분의 2 수준이었다. 박 씨의 투자금이 그 안에 포함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나머지 피해금을 언제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박 씨는 말했다.
"이율이 낮아서 오히려 안심했어요. 검색해도 다 나오고, 단체방 사람들도 다들 돈 받았다고 하니 의심할 이유가 없었죠."
실존하는 프로젝트 이름을 교묘히 변형한 사이트, 조작된 검색 결과, 그리고 단체방에서 서로를 안심시키는 집단 심리. 이 모든 요소가 맞물릴 때, 낮은 이율은 오히려 경계심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미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