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지기가 건넨 제안
대구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이명자 씨(가명, 54세)는 올해 초,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20년 지기였다.
"명자야, 이거 진짜 괜찮은 사업이야. 외국인 관광객들한테 유심 파는 건데, 정부 승인받은 통신사래. 나도 벌써 몇 달째 수익 받고 있어."
친구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매달 입금됐다는 수익 내역이 캡처되어 있었다. 이 씨는 반신반의했지만, 20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손해 볼 일을 권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업체는 인천에 사무실을 둔 '케이알이심'이라는 회사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공항과 관광지에서 eSIM(내장 유심)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실제로 뉴스에서도 방한 외국인 급증 소식이 자주 나오던 때였다.
실제로 들어온 돈, 그래서 믿었다
이 씨는 우선 300만 원을 넣어봤다. 업체는 eSIM을 판매하면 판매 건당 7~10%의 마진을 준다고 했다. 여기에 지인을 추가로 가입시키면 등급에 따라 1단계부터 8단계까지 인센티브가 쌓인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 달 뒤, 정말로 계좌에 수익금이 들어왔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약속한 대로 입금이 되자 이 씨의 의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거봐, 진짜 주잖아. 이거 사기였으면 진작 돈 떼먹고 도망갔겠지."
친구의 말에 이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업체는 수백 명이 모인 단체 대화방을 운영했다. 매일같이 승급 축하 메시지와 수익 인증, 경품 이벤트 공지가 올라왔다. 방 안에는 이 씨처럼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 중장년층이 많았다. 낯익은 얼굴들 속에서 이 씨는 점점 마음을 놓았다.
이 씨는 추가로 2천만 원을 더 넣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인센티브가 커진다는 말에, 주변 친척 두 명에게도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방에서 사라진 의심의 목소리
대화방이 커질수록 가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저희 회사, 실제로 유심 파는 거 본 사람 있나요? 매출 자료는 왜 안 보여주나요?"
그런 글이 올라오면 몇 분도 안 돼 삭제됐다. 글을 쓴 사람은 곧바로 대화방에서 강제 퇴장당했다.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괜히 부정적인 말 해서 분위기 깨지 말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씨도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이미 몇 달째 수익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48시간, 그리고 침묵
2026년 6월 중순, 평소처럼 들어오던 수익 지급이 갑자기 멈췄다. 대화방에는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시스템 점검으로 출금이 일시 중단됩니다. 정상화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며칠 뒤, 더 이상한 공지가 떴다.
"해외 정산 절차상 세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48시간 이내 원금의 20%를 테더(USDT)로 입금하지 않으면 계정이 영구 삭제됩니다."
이 씨는 그제야 등골이 서늘해졌다. 정상적인 사업체가 수익금도 아니고 원금의 일부를, 그것도 코인으로 먼저 보내라고 요구하는 일이 있을 리 없었다. 인터넷에 업체 이름을 검색하자,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 날, 회사 홈페이지와 대화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락처도, 직원도, 사무실도 모두 연결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빈 계좌뿐
이 씨는 결국 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총 피해액은 2천 3백만 원. 소개해준 친구 역시 더 큰돈을 잃었고, 이 씨가 권유했던 친척들 볼 낯도 없어졌다.
대구에서만 31건, 피해액 4억 5,800만 원이 신고됐다. 인천경찰청에도 132명이 접수했고, 고소장만 49건에 달했다. 언론은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연루되고, 피해액이 수천억 원대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 씨와 함께 피해를 본 대구의 한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20년 지인이 소개해줘서 의심하지 않았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이 씨가 당한 eSIM 다단계 사기의 핵심 수법이다.
- 실물 사업 위장: 외국인 관광객 대상 eSIM 판매라는 그럴듯한 실물 사업을 내세워 투자가 아닌 '사업'으로 포장
- 지인·가족 추천 구조: 가까운 사람이 직접 권유하게 만들어 초기 경계심을 무너뜨림
- 다단계(MLM) 인센티브: 판매 마진에 더해 추천 등급별(1~8레벨) 보상을 얹어 지인을 계속 끌어들이게 유도
- 초기 실제 수익 지급: 소액이라도 실제로 입금해 신뢰를 쌓는 전형적인 폰지 구조
- 집단 심리 조성: 수백 명 규모 대화방에서 승급 이벤트와 수익 인증을 반복 노출하고, 의심 글은 즉시 삭제·강제퇴장
- 갑작스러운 출금 정지 후 잠적: '세금 명목' 코인 선입금을 요구한 뒤 홈페이지와 대화방을 통째로 폐쇄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지인의 추천이라도 사업자등록, 통신판매업 신고 여부를 직접 확인하세요
- [ ] "정부 승인 통신사" 같은 표현은 관련 기관에 사실 여부를 직접 문의하세요
- [ ] 투자·판매 원금 대비 확정 수익률(월 10% 등)을 보장하는 사업은 의심하세요
- [ ] 지인을 추천하면 추가 수익을 준다는 구조(다단계)는 신중히 접근하세요
- [ ] 초기에 실제로 수익이 들어왔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 [ ] 대화방에서 의심 제기가 삭제되거나 글쓴이가 퇴장당한다면 즉시 발을 빼세요
- [ ] 출금을 위해 세금·수수료 명목으로 코인이나 현금을 먼저 요구하면 100% 사기입니다
- [ ] 투자 전 가족·지인과 상의하고, 소액이라도 계약서와 사업 실체를 반드시 확인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eSIM 다단계 투자 사기가 의심된다면 다음과 같이 대응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 신고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상담 및 피해 신고
- 계좌 지급정지 요청: 송금한 은행 고객센터에 즉시 요청
- 증거 보존: 대화방 캡처, 입출금 내역, 가입 서류를 모두 보관하세요
2026년 6월 이후 전국 곳곳에서 유사 피해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인의 소개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의 실체까지 검증된 것은 아니다.
이 사연은 실제 사기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과 세부 사항을 변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