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앱에서 만난 '완벽한 남자'
올해 43세인 이○○ 씨는 이혼 후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던 그녀는 지난해 말, 지인의 권유로 처음 데이팅앱을 설치했습니다.
앱을 깔고 며칠이 지났을 때, 한 남성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프로필 사진 속 그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환한 미소를 가진 40대 초반의 남성이었습니다. 자기소개란에는 "부산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과장, 현재 개인 클리닉 개원 준비 중"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첫 메시지가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이 인상적이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정중하고 배려 있는 첫 인사. 이 씨는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점점 깊어지는 신뢰
'박△△ 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남성은 매일 아침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로 시작해 밤에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로 마무리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이 씨에게 "엄마로서 정말 대단하시다"고 진심 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주쯤 지났을 때, 박 씨는 화상채팅을 제안했습니다. 화면 속 그는 흰 가운을 입고 병원 로비처럼 보이는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자연스럽고, 표정도 살아 있었습니다. 이 씨는 조금 안심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다"는 의심이 화상통화 한 번에 사라졌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자기"라는 호칭을 쓰자고 제안했고, 이 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들 이야기, 노후 계획, 좋아하는 음식까지 나누며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깊어졌습니다.
처음엔 아주 작은 부탁이었습니다
사귄 지 두 달째 되던 날, 박 씨에게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야, 나 지금 곤란한 상황인데... 도움을 요청하기 부끄럽지만 어쩔 수가 없어. 클리닉 개원 관련 기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오는데, 통관 절차에서 보증금이 필요하다고 해. 이틀만 빌려주면 바로 갚을게. 300만원만 도와줄 수 있어?"
이 씨는 망설였지만, 2개월간 쌓인 신뢰와 정이 그녀의 판단을 흐렸습니다. '설마 이 사람이 사기를 칠 리가. 의사잖아. 그리고 곧 돌려준다고 했으니까.'
300만원을 보내자 이틀 뒤 바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한이 되자 "통관이 길어졌다"며 다시 500만원을 더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도 보내주면 전부 다 같이 돌려줄게. 이자도 줄게."
한 번 건넨 돈이 인질이 된 것처럼, 이 씨는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다시 돈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들었습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그 후로 요구는 계속됐습니다. "클리닉 계약금이 부족하다", "급하게 수술 재료를 구해야 한다", "세금 문제가 생겼다"... 매번 그럴듯한 이유가 붙었고, 매번 "이번 한 번만"이라는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이 씨는 적금을 해지하고, 보험을 해약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친정어머니 명의로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어머니에게는 "투자 기회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5개월에 걸쳐 보낸 돈이 1억 4천만원에 달했습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박 씨가 처음으로 직접 만나자는 약속을 어겼을 때였습니다. 서울에 온다고 했던 날, 연락이 뜸해지더니 "급히 해외 학회에 가게 됐다"는 메시지 하나만 남기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불안해진 이 씨가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역방향 검색해보니, 그 사진은 실존하는 다른 남성의 SNS에서 도용된 것이었습니다. 화상통화 속 인물은 AI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된 가짜였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계좌는 이미 여러 차례 세탁된 뒤였고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믿었을 뿐인데, 그 믿음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이 씨를 속인 사기범들의 핵심 수법을 분석했습니다.
- 딥페이크 화상통화: AI로 생성한 가짜 인물로 화상통화를 진행하여 실제 사람인 것처럼 속임. 목소리와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구현
- 고학력·전문직 사칭: 의사, 변호사, 해외 교포 등 신뢰도 높은 직업 위장
- 장기 신뢰 구축: 바로 돈을 요구하지 않고 수개월에 걸쳐 감정적 유대 형성
- 소액에서 시작하는 점진적 요구: 처음에는 '이틀만 빌려달라'는 소액 요청으로 시작해 금액을 점점 키움
- 기존 피해금을 인질로 활용: '이번에 더 보내야 먼저 보낸 돈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로 추가 피해 유도
- 고립 전략: '가족에게 말하면 복잡해진다', '아무도 이해 못 한다'며 주변과 단절 유도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구글 역방향 이미지 검색으로 반드시 확인하세요
- [ ] 화상통화만으로 신원을 믿지 마세요. AI 딥페이크는 실시간 화상통화도 가능합니다
- [ ]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절대 금전을 이체하지 마세요
- [ ] '잠깐만 빌려달라',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은 사기의 전형적인 시작 신호입니다
- [ ] 돈을 보낸 뒤 더 보내야 찾을 수 있다는 논리는 100% 사기입니다
- [ ] 이성 교제 중 금전 요청이 오면 즉시 가족이나 지인과 상의하세요
- [ ] 대출을 받아 모르는 사람에게 송금하는 것은 무조건 멈춰야 합니다
- [ ] 의심되는 계좌는 금융감독원 1332로 조회 신청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 (사이버수사대)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계좌 지급정지 요청 병행)
- 사이버범죄 신고 시스템: ecrm.police.go.kr
- 증거 보존: 대화 내역, 송금 내역, 프로필 사진, 화상통화 화면 캡처 전부 저장
- 가족과 공유: 수치심에 혼자 숨기지 말고 가족에게 알려 추가 피해 방지
이 사연은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