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영상 한 편이 부른 단체 대화방
2023년 12월, 인터넷에 떠도는 짧은 영상 한 편이 있었다. "AI가 알아서 주식과 코인을 분석해 자동으로 매매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영상 아래에는 단체 대화방 링크가 달려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링크를 눌러 들어간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 대화방으로 안내받았다. 단체방에서 여러 사람과 나누던 이야기가, 어느새 일대일 상담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앱만 깔면 AI가 다 알아서 합니다"
개인 대화방에서 만난 상대는 투자 권유자였다. 그는 "AI 분석을 통한 자동매매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전용 투자 앱을 설치하라고 안내했다.
앱을 켜면 화면 위로 매수·매도 창이 실시간으로 움직였다. 수익률이 오르는 그래프도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이 화면은 실제 거래가 아니었다. 조직이 미리 조작해 놓은 가짜 화면일 뿐, 그 뒤에서 진짜 주식이나 코인이 거래된 적은 없었다.
이 투자사기 조직은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범행을 설계하고 지시하는 사람, 피해자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사람, 범행에 쓸 계좌를 마련하는 사람, 그리고 들어온 돈을 가상자산으로 바꿔 관리하는 사람까지. 40세 남성 A씨는 그중 마지막 역할, 피해금을 환전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오후 4시 59분, 이체 버튼
피해자 B씨도 그렇게 단체방과 개인 상담을 거쳐 투자를 결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2024년 1월 19일 오후 4시 59분, B씨는 조직이 알려준 법인 명의 계좌로 1,970만원을 송금했다. 화면 속 그래프를 보며, 이 돈이 실제로 투자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B씨가 보낸 돈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법인 명의 계좌에 모인 피해금은 또 다른 법인 계좌를 거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테더코인(USDT)으로 바뀐 뒤, 조직이 지정한 전자지갑으로 보내졌다. 계좌와 거래소를 여러 번 거치는 동안, 돈의 흐름은 점점 추적하기 어려워졌다.
2023년 12월 19일부터 2024년 1월 20일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이런 방식으로 조직이 챙긴 피해액은 22억 3,505만 5,100원에 달했다. 정확한 피해자 수는 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B씨의 사례는 그중 한 건에 불과했다.
캄보디아에서 조종된 사기, 징역 5년
이 투자사기 조직은 캄보디아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피해금을 여러 계좌와 가상자산을 거치게 해, 그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2026년 9월 11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이아영 판사는 피해금 환전과 관리를 맡았던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실제 투자하지 않았고, 수익금을 반환할 의사가 없었다"고 판시했다.
화면 속 그래프도, 앱 속 거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를 속이기 위한 장치였다는 뜻이다.
"AI 자동매매"라는 말부터 의심하자
"AI가 알아서 큰 수익을 내준다"는 말은 최근 투자 사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다. AI라는 최신 기술을 내세우면 사람들은 쉽게 신뢰하지만, 화면에 보이는 수익률과 거래 내역이 진짜인지는 누구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SNS 영상과 단체방을 거쳐 개인 상담으로 이어지는 흐름, 낯선 앱 설치를 유도하는 방식도 이번 사건에서 반복된 패턴이었다. 투자를 권유받았다면 해당 업체가 금융당국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