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했는데도 돈은 어디에도 없었다
2025년 5월, 경기도에 사는 70대 자영업자는 검사를 사칭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상대는 "범죄에 연루됐으니 모든 자산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겁이 난 이 피해자는 집을 담보로 사채를 쓰고 가족에게 돈을 빌려 8억 5,000만 원을 마련해 지정된 계좌로 보냈습니다.
같은 해 6월, 제주도의 50대 자영업자는 '주식 전문가'를 사칭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정된 계좌로 투자금을 넣으면 해외 선물 거래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이었고, 이 피해자는 배우자의 암 진단비로 받은 300만 원을 보냈습니다.
세종의 50대 회사원은 2025년 3월 저금리 대출을 받으려면 기존 대출금부터 갚아야 한다는 말에 속아 9,5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이분은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고, 집을 급매로 처분해야 했습니다.
(피해자 신원 보호를 위해 성은 밝히지 않았고, 위 내용은 경찰 발표와 언론 보도에서 확인된 사실만 옮긴 것입니다.)
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묶여' 있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사기를 깨달은 뒤에도 돈을 찾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은행 계좌를 확인해 보니 잔액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돈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범죄에 쓰인 은행 계좌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와 연결된 은행 계좌로 옮겨졌고, 거래소가 해당 계정을 동결해 둔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정보였습니다. 은행 계좌로 들어간 피해금은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지급정지와 금융회사 간 정보 공유를 거쳐 환급됩니다. 하지만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피해자 정보를 받을 법적 근거가 없어 동결된 돈의 주인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들도 자기 돈이 거래소로 넘어간 사실을 몰라 환급을 요청하지 못했습니다.
3년의 추적 끝에 돌아온 돈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23년 3월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와 피싱 대응책을 논의하던 중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2023년 4월부터 약 3년간 거래소 전자지갑 1,050개와 은행 계좌 약 16만 3,000개의 자금 흐름을 추적해 피해자를 특정했고, 거래소와 정보를 공유해 환급을 진행했습니다.
경찰은 2023년 9월부터 이달 15일까지 피해자 1,137명에게 약 263억 원을 돌려줬다고 9월 29일 밝혔습니다. 2017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거래소 계정에 동결돼 있던 피해금 대부분입니다. 다만 전액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위 8억 5,000만 원 피해자는 4,300만 원, 9,500만 원 피해자는 약 2,200만 원, 300만 원 피해자는 230만 원을 돌려받았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기관 사칭 후 '지정 계좌' 송금 요구: 검사, 금융회사 직원, 투자 전문가를 사칭해 돈을 옮기게 합니다.
- 피해금의 빠른 이동: 은행 계좌에 오래 두지 않고 거래소 연결 계좌로 옮겨 추적을 어렵게 만듭니다.
- 동결 만료를 노린 인출: 거래소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입출금을 최대 6개월까지 차단할 수 있는데, 일부 계정 명의자는 차단이 풀리자 피해금 약 30억 4,000만 원을 임의로 처분했습니다. 경찰은 이 계정 명의자 130명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입니다.
- 고립과 자책 유도: 피해자가 창피함과 자책감에 신고를 미루면 회수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수사기관과 금융회사는 전화로 계좌 이체나 '안전 계좌' 송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대출을 받으려면 먼저 돈을 보내라는 요구는 사기입니다.
- 원금이나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투자 권유 전화는 곧바로 끊으세요.
- 급하게 돈을 마련하라는 말을 들으면 송금 전에 가족이나 112, 금융감독원 1332에 먼저 확인하세요.
- 다른 사람이 부탁한 계좌나 가상자산 계정을 만들어 주거나 빌려주지 마세요.
- 피해를 입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즉시 신고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 즉시 112 또는 금융회사 고객센터에 신고해 지급정지를 요청하세요.
- 송금 내역, 통화 기록, 문자 등 증거를 보관하세요.
- 피해금이 가상자산 거래소로 넘어갔을 수 있으니 신고한 경찰서에 이 점을 함께 문의하세요.
- 2025년 8월 이전에 피해를 입고 환급받지 못했다면 신고했던 경찰서에 동결금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이번 환급 대상 피해금 상당수는 법적 근거가 없어 오래 묶여 있었습니다. 2026년 10월 1일부터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시행되면 '금융회사' 범위에 가상자산사업자가 포함되어, 은행과 거래소 사이의 피해자 정보 공유와 환급이 신속해질 전망이라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이 글은 2026년 9월 29일 서울경찰청 발표를 다룬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성과 세부 정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