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취방, 한국외대 앞 원룸
이○○ 씨(가명, 23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작한 대학생이었다. 통학 시간을 줄이고 싶어 집을 알아보던 중, 학교 앞 원룸 밀집 지역의 한 건물을 소개받았다.
공인중개사는 "이 건물은 워낙 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방이 많다"고 했다. 이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전세보증금은 부모님이 마련해준 돈이었다.
벽 너머는 원래 화장실이었다
이 씨가 살던 건물은 겉보기엔 평범한 원룸·오피스텔 건물이었다. 하지만 훗날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달랐다. 건물주 A씨(59세)는 원래 화장실이나 보일러실로 쓰이던 비주거 공간까지 벽을 세워 방으로 개조했다. 이런 방식으로 임대 가능한 호실은 580여 개까지 늘어났다.
방이 늘어난 만큼 받을 수 있는 보증금도 늘어났다. 하지만 그만큼 언젠가 돌려줘야 할 보증금도 함께 불어났다.
새 세입자의 돈으로 이전 세입자에게
이 씨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이사를 준비하던 무렵, 보증금 반환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이었다.
알고 보니 A씨의 임대 구조는 처음부터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나가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막는 방식이었다. 방이 새로 생기고 계약이 새로 이뤄질 때마다 당장 돌려줄 돈은 잠시 마련됐지만, 구조 자체는 점점 위태로워졌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임대차계약서 139장을 위조하고, 새마을금고에서 약 20억 4,000만원의 대출을 부정하게 받아내기까지 했다.
신용점수 863점에서 297점으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더 무거웠다. 재판부는 A씨가 이미 2019년 6월경부터 "계약이 종료돼도 보증금 전액을 돌려주지 못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근거로 제시된 것은 A씨의 신용정보점수였다. 2021년 8월 863점이었던 점수는 2023년 4월 297점까지 떨어졌다. 재정 상태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는 이미 뚜렷했지만, 세입자들에게 이 사실이 전해질 리는 없었다.
법원, 징역 12년을 선고하다
2026년 8월 27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나상훈)는 A씨에게 징역 12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15년보다는 낮아진 형량이었다. A씨의 친누나로 범행에 가담한 B씨(67세)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법원이 인정한 피해자는 모두 154명,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총 162억 7,650만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B씨와 관련된 피해자는 12명, 피해액은 15억 2,000만원이었다.
이 씨는 판결 소식을 듣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방이 왜 이렇게 많은지 궁금하긴 했어요. 그런데 그게 화장실을 개조한 방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비주거 공간 불법 개조: 화장실, 보일러실 등 원래 주거용이 아닌 공간까지 벽을 세워 임대 가능한 방으로 둔갑시켰다.
- 돌려막기(폰지형) 임대 운영: 새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막는 구조는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
- 임대차계약서 위조: 139장에 달하는 계약서를 위조해 금융기관과 세입자를 속였다.
- 금융기관 부정대출: 새마을금고에서 약 20억 4,000만원을 부정하게 대출받아 자금 돌려막기에 활용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계약 전 건축물대장을 열람해 실제 용도와 호실 구조가 계약 내용과 일치하는지 확인하세요.
- [ ] 화장실이나 보일러실이 있어야 할 위치에 방이 있는 등 구조가 부자연스럽다면 불법 개조를 의심하세요.
- [ ] 같은 건물, 같은 임대인 명의로 유독 많은 임대차 계약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세요.
- [ ] 전세보증금 반환보증(HUG) 가입이 가능한 매물인지 계약 전에 반드시 확인하세요.
- [ ] 계약 즉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확보하세요.
- [ ] 등기부등본으로 근저당 설정액과 보증금 총액을 비교해 위험 신호를 점검하세요.
- [ ] 대학가 원룸 밀집 지역일수록 방이 지나치게 많은 건물은 한 번 더 확인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전세사기가 의심되거나 이미 피해를 입었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다음 절차를 밟으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법원에 신청하면 이사한 뒤에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대한법률구조공단: 국번 없이 132, 무료 법률 상담과 소송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신청: 주소지 관할 시·군·구청(주택과)에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 HUG(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피해지원 상담센터: 1588-1663 (평일 10:00~17:00)
- 금융감독원 파인(FINE) 포털: fine.fss.or.kr에서 금융회사 관련 피해 정보와 대응 방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연은 실제 보도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피해자는 가명을 사용한 가상의 인물이며, 조직·수법·피해 규모 등 사실관계는 공개된 법원 판결 및 언론 보도를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