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시작된 설렘
올해 34세인 이○○ 씨(여성, 회사원)는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밝은 성격이지만, 바쁜 직장 생활 탓에 연애할 시간이 없어 몇 년째 싱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2026년 1월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낯선 팔로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프로필 사진 속 남성은 단정한 인상의 30대 후반으로, 싱가포르에서 IT 스타트업을 운영한다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피드에는 고급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하는 사진, 해외 콘퍼런스 참석 사진, 반려견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사진이 가득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님. 한국 마케팅 트렌드에 관심이 많아서 팔로우했어요. 혹시 커피 한 잔 하듯 가볍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전형적인 스팸 메시지와 달리, 자연스럽고 예의 바른 첫 인사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피드를 살펴보니 게시물이 수십 개나 되었고, 댓글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 씨는 "진짜 사업가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답장을 보냈습니다.
점점 깊어지는 감정의 덫
처음에는 업무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는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 씨의 마케팅 경험을 존중해 주었고, 이 씨가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대화는 카카오톡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2주째부터 그는 매일 밤 10시에 음성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 씨. 좋은 꿈 꾸세요."
낮고 따뜻한 목소리였습니다. 약간의 한국어 억양이 섞인 자연스러운 말투에, 이 씨는 매일 밤 그 음성 메시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 씨는 이 목소리가 AI 음성 합성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영상통화를 제안했습니다. 화면 속 그는 프로필 사진과 같은 얼굴이었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대화했습니다. 배경에는 싱가포르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이 보였습니다. 이 씨는 완전히 안심했습니다.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이 ○○ 씨예요."
사실 이 모든 것은 치밀하게 계획된 사기였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수개월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고, 프로필 사진은 해외 모델의 사진을 도용한 것이었습니다. 영상통화는 실시간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한 합성 영상이었고, 매일 밤 보내온 음성 메시지는 AI가 생성한 합성 음성이었습니다. 최근 AI 기술은 몇 초 분량의 음성 샘플만으로도 그 사람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순간
교제 2개월째,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씨, 사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한국 진출 프로젝트 자금이 싱가포르 은행에서 한국 계좌로 바로 이체가 안 돼서요. ○○ 씨 계좌로 먼저 보내고, 한국 파트너 회사로 다시 보내줄 수 있을까요? 일주일이면 정리될 거예요."
처음에는 500만원이었습니다. 그가 보내준 송금 확인증을 보니 실제로 돈이 들어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조작된 이미지였고, 이 씨는 자신의 돈 500만원을 지정된 계좌로 보냈습니다.
일주일 뒤, 그는 다시 연락했습니다.
"정말 미안해요. 세관 문제로 한국 파트너 회사가 긴급 자금이 필요하대요. 1,500만원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제가 다음 주에 직접 한국에 가서 바로 갚을게요."
이 씨는 고민했지만, 매일 밤 들려주던 그 따뜻한 목소리, 영상통화에서 보여준 진심어린 눈빛, 그리고 "곧 만나자"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1,500만원을 보냈습니다.
그 후에도 "물류비 문제", "법률 수수료", "보증금"이라는 명목으로 송금 요청이 계속되었습니다. 3개월 동안 이 씨가 보낸 돈은 총 5,000만원에 달했습니다. 퇴직금과 비상금, 심지어 적금까지 깨서 보낸 돈이었습니다.
무너진 꿈, 뒤늦은 깨달음
4월 초, 이 씨는 마침내 한국 방문 날짜를 물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인천공항으로 갈게요. 기다려줘요."
하지만 월요일이 되자 갑자기 연락이 끊겼습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읽히지 않았고, 인스타그램 계정은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전화번호도 없는 번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한 이 씨는, 자신이 당한 것과 똑같은 수법의 피해 사례가 수도 없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돈은 이미 여러 대포통장을 거쳐 해외로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경찰은 "캄보디아나 미얀마에 거점을 둔 조직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는 말했습니다.
"가장 힘든 건 돈을 잃은 것보다, 3개월 동안 진심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전부 가짜였다는 거예요. 매일 밤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는데, 그게 AI가 만든 목소리라니... 그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요."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이 씨를 속인 사기 조직의 핵심 수법을 정리했습니다.
- 정교한 SNS 프로필 구축: 수개월 전부터 게시물, 댓글, 팔로워를 만들어 실제 인물처럼 보이게 위장
- AI 음성 합성: 자연스러운 합성 음성으로 매일 음성 메시지를 보내 감정적 유대 형성
- 실시간 딥페이크 영상통화: AI가 실시간으로 타인의 얼굴을 합성하여 영상통화 진행
- 장기 신뢰 구축: 1-2개월간 매일 대화하며 투자나 금전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다가 갑자기 부탁
- 소액에서 대액으로: 처음에는 합리적인 금액을 요청한 뒤, 점점 금액을 늘림
- 직접 만남 회피: "곧 한국에 간다"고 약속하지만 계속 미루거나 취소
- 조작된 증빙 서류: 송금 확인증, 계약서, 비행기 티켓 등을 위조하여 신뢰 확보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SNS에서 먼저 연락하는 해외 거주 이성을 경계하세요
- [ ] 프로필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확인하세요 (도용 여부)
- [ ] 음성 메시지와 영상통화도 AI로 조작될 수 있습니다
- [ ]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보내지 마세요
- [ ] "계좌 이체 대행"을 부탁하면 100% 사기입니다
- [ ] 대화를 메신저 앱으로 옮기자고 하면 의심하세요
- [ ] 직접 만남을 계속 미루거나 핑계를 대면 사기를 의심하세요
- [ ]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즉시 대화를 중단하세요
- [ ]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반드시 상의하세요
- [ ] 의심되면 경찰(112), 금융감독원(1332)에 먼저 확인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 사이버수사대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피해 계좌 지급정지 요청)
- 증거 보존: SNS 대화 내역, 음성 메시지, 영상통화 캡처, 송금 내역 모두 저장
- 추가 송금 중단: 어떤 명목이든 절대 추가로 돈을 보내지 마세요
- 사이버범죄 신고: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https://ecrm.police.go.kr)
2026년 현재 정부는 캄보디아, 미얀마 등 해외 사기 조직과의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있으며, 올해 1월에만 73명의 조직원을 강제 송환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금융당국은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을 도입하여 로맨스 스캠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절대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로맨스 스캠은 AI 기술까지 동원한 정교한 조직범죄입니다. 대학교수, 의사, 기업 임원도 당하는 사기입니다. 외로워서 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악용한 범죄자들의 잘못입니다. 신속한 신고가 피해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이 사연은 2026년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과 일부 각색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