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DM 한 통으로 시작된 인연
올해 54세인 박○○ 씨(가명)는 15년 전 이혼 후 혼자 두 아이를 키워온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퇴근 후 무료함을 달래며 인스타그램을 보던 어느 날 밤, 낯선 계정에서 DM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프로필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서 용기를 내서 연락했습니다."
발신자는 '제임스 윌슨'이라는 이름의 40대 미국인 심장전문의였습니다. 계정에는 병원 가운을 입은 단정한 남성의 사진과 멋진 여행 사진들이 가득했고, 팔로워도 수천 명이었습니다. 박 씨는 처음엔 스팸이겠거니 하고 무시하려 했지만, 이틀 뒤 다시 날아온 정성스러운 메시지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점점 깊어지는 신뢰, 정교한 함정
제임스는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도 힘내세요"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박 씨가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하면 따뜻한 위로를,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엄마예요"라며 공감해줬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둘은 매일 화상통화를 했습니다.
화상통화 속 제임스는 실제로 움직이며 말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목소리도, 웃음도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이것은 실시간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합성 영상이었습니다. 사기범들은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수집한 중년 백인 남성의 사진과 영상을 AI로 합성하여 자연스러운 화상통화를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박 씨가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하면 제임스는 항상 이유를 댔습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 의료 지원 프로그램에 파견 중이라서요. 6개월만 기다려주세요."
첫 번째 위기, 그리고 돈
만남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제임스가 다급하게 연락해왔습니다.
"큰일 났어요. 현지 병원 창고에 보관 중인 의료 장비가 세관에 묶였는데, 통관 수수료를 내야 한대요. 30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 한국 돌아가면 바로 갚을게요."
박 씨는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6개월 가까이 매일 대화를 나눈 남자였습니다. 그가 보내준 수많은 진료 사진, 환자들과 찍은 사진들... 믿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같았습니다. 박 씨는 처음으로 3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 돌아가면 예쁜 선물 잔뜩 들고 갈게요."
이후 요구는 점점 커졌습니다. 의료 장비 손상 보상금 500만 원, 현지 직원 급여 대납 800만 원, 비상 항공권 구매 1,200만 원... 박 씨는 적금을 깨고, 신용카드 한도를 올리고, 지인에게 빌리기까지 하며 총 5,000만 원을 보냈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진실
다섯 번째 송금 요청을 받던 날, 박 씨의 딸이 우연히 대화 내용을 봤습니다.
"엄마, 이거 로맨스 스캠이야. 뉴스에서 봤어."
박 씨는 처음엔 화를 냈습니다. "네가 뭘 알아? 우리가 매일 얼굴 보고 통화하는데!" 하지만 딸과 함께 인터넷을 검색하자 충격적인 사실들이 쏟아졌습니다. 제임스의 프로필 사진은 미국 실제 의사의 사진을 도용한 것이었습니다. 역방향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그 의사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돈은 이미 여러 계좌를 거쳐 해외로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피해 금액 5,000만 원 중 회수된 금액은 0원이었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박 씨를 속인 로맨스 스캠의 핵심 수법입니다.
- SNS 무작위 접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중년 여성을 타겟으로 삼아 '아름답다'는 칭찬으로 접근
- 완벽한 조건 설정: 의사, 군인, 엔지니어 등 신뢰도 높고 해외 체류 명분이 있는 직업 사칭
- 딥페이크 화상통화: AI 기술로 타인의 얼굴을 실시간 합성하여 실제처럼 보이는 영상통화 진행
- 감정 폭격(Love Bombing): 매일 아침 인사, 지속적인 관심, 극도의 공감으로 감정적 의존 유도
- 해외 체류 핑계: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의심을 차단
- 단계적 금전 요구: 소액으로 시작해 신뢰를 확인한 뒤 금액을 점진적으로 키움
- 긴급 상황 조작: 세관 문제, 의료비, 사고 등 즉각 대응을 유도하는 가짜 위기 연출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SNS에서 처음 연락한 외국인이 지나치게 호감을 표현하면 일단 의심하세요
- [ ] 프로필 사진을 구글 역방향 이미지 검색으로 확인하세요
- [ ] 화상통화를 해도 딥페이크일 수 있습니다. 실시간 동작 테스트(손바닥 펴기, 뒤돌기)를 요청하세요
- [ ] 직접 만난 적 없는 상대에게는 절대 돈을 보내지 마세요
- [ ] 가족이나 친구에게 먼저 상황을 공유하세요. 제3자의 시각이 중요합니다
- [ ] 해외 송금 전 반드시 24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하세요
- [ ] 금융기관 사기 예방 서비스(지연송금제 등)를 활용하세요
- [ ] 의심 시 경찰청 사이버범죄신고시스템(ecrm.police.go.kr)에 신고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사이버범죄신고시스템(ecrm.police.go.kr)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불법 금융행위 신고)
- 계좌 지급정지: 해당 은행 고객센터에 즉시 요청
- 증거 보존: 대화 내역, 송금 내역, 상대방 계정 화면 캡처
- 해외송금 취소 요청: 은행 외환거래팀에 즉시 연락
이 사연은 2026년 실제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들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