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보금자리를 향한 설렘
올해 34세인 박OO 씨(가명)는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입니다. 아내와 함께 1년간 월세로 살면서 꾸준히 저축한 돈과 전세자금 대출을 합쳐 마련한 2억 1천만원. 서울 외곽의 한 역세권 신축 빌라에 전세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을 공인중개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신혼집으로 딱 좋은 매물이에요. 역에서 5분 거리에 신축이고, 전세가도 시세보다 좀 저렴한 편이에요." 중개사의 말에 부부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매물을 보러 간 날, 깔끔한 인테리어와 채광 좋은 남향 구조에 마음이 확 끌렸습니다. 등기부등본도 확인했습니다. 소유자 이름은 '박인송', 근저당 설정은 7천만원. 빌라 시세가 3억 5천만원대라는 설명에, 근저당과 전세금을 합쳐도 2억 8천만원이니 안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좌 명의가 집주인 이름이니 안심하세요"
계약 당일, 집주인 '박인송' 씨와 직접 대면하여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계약금 1천만원은 현장에서 집주인의 개인 계좌로 송금했고, 정상적으로 입금이 확인되었습니다.
문제는 잔금일에 발생했습니다. 잔금 2억원을 보내야 하는 날, 중개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집주인분이 세금 문제로 잔금은 다른 계좌로 받으셔야 한다고 하시네요. 계좌번호 알려드릴게요. 입금하실 때 '박인송'으로 뜨는 거 확인하시면 됩니다."
박 씨는 잠시 의아했지만, 중개사가 알려준 계좌로 소액을 먼저 테스트 송금해보았습니다. 입금자명에 '박인송'이 정확히 표시되었습니다. '진짜 집주인 계좌가 맞구나.' 안심한 박 씨는 나머지 2억원을 모두 송금했습니다.
하지만 그 계좌는 집주인 박인송 씨의 계좌가 아니었습니다. '박달동 인사동 송이버섯 요리연구 모임'이라는 단체통장이었습니다. 집주인 이름 '박인송'의 각 글자를 첫 글자로 따서 삼행시처럼 만든 가짜 단체통장. 입금할 때는 '박인송'이라고만 표시되어, 세입자는 진짜 집주인 계좌로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라진 중개사, 사라진 돈
잔금을 보낸 뒤 이사 날짜를 잡으려 중개사에게 연락했지만, 전화가 먹통이었습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도 읽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직접 중개사무소를 찾아갔더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벽에 붙어 있던 중개사 자격증과 간판마저 떼어진 상태였습니다.
급히 집주인 박인송 씨에게 연락하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잔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계약금 1천만원만 받았어요. 2억은 어디로 보내신 건가요?"
그제야 박 씨 부부는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1년간 아끼고 모은 돈, 부모님께 빌린 돈, 은행 대출까지... 2억원이 증발한 것입니다.
"계좌 이름이 '박인송'이었어요. 누가 그게 가짜 통장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박 씨는 경찰 조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8억원의 피해, 50명의 눈물
경찰 수사 결과, 이 사건의 범인은 공인중개사 자격을 가진 임OO 남매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2021년부터 약 3년간 경기도 오산, 서울 강남 등지에서 건물주 이름을 딴 삼행시 단체통장을 만들어 세입자들의 전세금을 가로채왔습니다.
수법은 체계적이었습니다. 건물 여러 채를 위탁 관리하면서, 건물마다 건물주 이름에 맞춘 단체통장을 개설했습니다.
- 건물주 '우태연' - '우리나라 태극기 동호회 연합' 통장
- 건물주 '노치영' - '노래로 치유하는 사람들의 영구 모임' 통장
- 건물주 '박인송' - '박달동 인사동 송이버섯 요리연구 모임' 통장
피해자는 50여 명, 미회수 전세금은 28억원 이상. 실제 건물주들도 전세금을 받지 못해 피해를 입었습니다. 범행 후 임 씨 남매는 중개사무소를 폐쇄하고 잠적했으며, 현재 5명이 검찰에 송치된 상태입니다.
왜 이런 사기가 통할까?
삼행시 통장 사기가 성공하는 이유는 은행 시스템의 허점에 있습니다. 단체통장(모임통장)은 비교적 간편하게 개설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이 여러 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입금 시 표시되는 이름은 단체명의 첫 글자들만 조합되어 보여집니다.
즉, '박달동 인사동 송이버섯 요리연구 모임'의 경우 입금 화면에는 '박인송'이라고만 뜹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주인 본인 명의 계좌와 구별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계약금은 실제 집주인 계좌로 보내게 하여 신뢰를 쌓은 뒤, 잔금만 가짜 통장으로 유도하는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의심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삼행시 단체통장: 집주인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체통장으로, 입금 시 집주인 이름이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사기범이 관리하는 계좌입니다.
- 잔금 계좌 변경 요구: 계약금은 진짜 계좌로 받고 신뢰를 쌓은 뒤, 잔금은 "세금 문제" 등을 핑계로 다른 계좌를 안내합니다.
- 중개사 공모: 공인중개사 자격을 가진 범인이 직접 중개 역할을 하며, 전문가라는 신뢰감으로 피해자의 경계심을 무너뜨립니다.
- 건물 위탁 관리 위장: 여러 건물을 위탁 관리한다고 속이고, 건물마다 다른 삼행시 통장을 만들어 피해를 확대합니다.
- 시세보다 저렴한 미끼: 시세보다 약간 저렴한 매물로 세입자를 유인하여 빠른 계약을 유도합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잔금은 반드시 계약서에 기재된 동일한 계좌로 송금하세요. 계좌 변경 요구는 즉시 의심하세요.
- 계좌번호만 확인하지 말고, 통장 사본을 직접 받아 예금주명과 계좌번호를 교차 확인하세요.
- 잔금 송금 전 집주인에게 직접 전화하여 계좌 정보를 확인하세요. 중개사를 통해 전달받은 계좌를 맹신하지 마세요.
- 공인중개사의 자격 진위를 국가공간정보포털(nsdi.go.kr)에서 확인하세요.
- 전세보증보험(HUG, SGI) 가입 가능 여부를 반드시 사전에 확인하세요.
- 등기부등본을 계약일, 잔금일, 전입신고일 세 번 확인하세요.
- 시세보다 지나치게 저렴한 매물은 반드시 의심하세요.
- 중개사무소가 오래 영업한 곳인지, 최근에 개설된 곳인지 확인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삼행시 통장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사기죄로 고소하세요. 통장 거래 내역, 중개사와의 카카오톡 대화 등 증거를 함께 제출하세요.
- 계좌 지급정지: 송금한 은행에 즉시 지급정지를 요청하세요. 빠를수록 환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전화하여 삼행시 단체통장 악용 사실을 신고하세요.
-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신청: 전세사기피해자 지원관리시스템(jeonse.kgeop.go.kr)에서 피해자 결정을 신청하세요. 신청 기한은 2027년 5월 31일까지입니다.
- 정부 지원 연락처:
- 전세사기 피해지원 콜센터: 1670-5878
- 국토교통부 콜센터: 1599-0001
- 대한법률구조공단: 국번 없이 132
이 사연은 실제 삼행시 통장 전세사기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과 일부 상황을 변경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삼행시 통장을 이용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50여 명, 미회수 전세금은 28억원 이상으로, 범인들은 3년간 전국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습니다. 계좌 명의만 확인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통장 사본을 직접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