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앱에서 시작된 설레는 만남
올해 47세인 이OO 씨(가명)는 경기도의 한 중견기업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올해 1월 채팅앱에서 한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프로필이 인상적이어서 용기 내어 연락드려요. 저는 서울에서 무역회사를 다니는 34세 수진이라고 합니다."
수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대방은 세련된 프로필 사진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놓았습니다. 혈액형부터 좋아하는 음식, 부모님 직업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이 씨는 경계심이 풀렸습니다.
영상통화까지 한 '완벽한' 상대
과거 로맨스 스캠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던 이 씨는 나름 조심했습니다. 2주째 되던 날, 먼저 영상통화를 제안했습니다. 놀랍게도 수진은 흔쾌히 응했습니다.
화면 속 수진은 프로필 사진과 똑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이 씨가 하는 말에 실시간으로 반응했습니다. 5분 남짓한 짧은 통화였지만, 이 씨는 완전히 안심했습니다.
"영상통화까지 했으니 진짜 사람이라고 확신했어요. 사기꾼이 어떻게 영상통화를 하겠어요?"
하지만 이 씨가 몰랐던 것이 있었습니다. 수진의 얼굴은 SNS에서 수집한 일반인 여러 명의 사진을 조합해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사기 조직은 전문 '딥페이크 투자유도팀'을 운영하며, 실시간 영상통화에서도 가짜 얼굴을 자연스럽게 합성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투자 이야기
한 달이 지나자, 수진은 조심스럽게 투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빠, 나 요즘 가상화폐 투자로 짭짤하게 벌고 있어. 유튜브에서 본 전문가가 추천해준 건데, 나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진짜 수익이 나더라고. 오빠도 해볼래?"
수진은 특정 유튜브 채널을 공유했습니다. 가상화폐 시세 분석, 투자 전략을 설명하는 전문적인 영상들이 올라와 있었고, 댓글에는 "수익 인증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벌었어요" 같은 글이 빼곡했습니다. 물론 이 유튜브 채널, 댓글까지 모두 사기 조직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수진은 자신의 투자 수익 캡처 화면도 보내왔습니다. 500만원을 넣어 2주 만에 680만원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씨는 처음에 200만원만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수진이 알려준 거래소 사이트에 가입하고 200만원을 입금하자, 일주일 만에 잔고가 260만원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60만원의 수익금을 실제로 출금까지 해보니, 진짜 통장에 돈이 들어왔습니다.
커져가는 투자, 사라진 돈
출금까지 성공하자, 이 씨의 경계심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수진의 권유에 1,000만원을 추가 입금했고, 또 수익이 났습니다. 확신이 선 이 씨는 두 달에 걸쳐 총 5,800만원을 투입했습니다. 아내 사별 후 받은 보험금 일부와, 적금을 깨서 마련한 돈이었습니다.
거래소 화면상 잔고는 8,700만원까지 불어나 있었습니다. 이 씨는 기뻤습니다. 수진과의 관계도 깊어져, 다음 달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습니다.
그런데 3월 초, 3,000만원을 출금하려 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객님의 계좌에 자금세탁방지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 출금을 위해 보증금 500만원을 추가 입금해 주세요."
이상함을 느낀 이 씨가 수진에게 연락하자, 수진은 "나도 처음에 그랬는데 보증금 넣으면 바로 풀려" 라고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뜻 돈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무너져 내린 거짓의 성
불안해진 이 씨는 인터넷에 해당 거래소 이름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검색 결과, 같은 사이트에서 돈을 잃었다는 피해 후기가 수십 건 올라와 있었습니다. "딥페이크 로맨스 스캠"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씨는 허겁지겁 수진에게 영상통화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메시지도 읽씹. 다음 날, 수진의 채팅앱 계정은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거래소 사이트도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신고한 이 씨는 수사관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기업형 사기 조직입니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팀, 투자 유도팀, 딥페이크 영상팀, 채팅팀, 댓글 조작팀, 자금세탁팀까지 6개 팀이 분업하며 운영합니다. 영상통화 속 인물은 AI가 실시간으로 합성한 가짜입니다."
5,800만원. 아내가 남긴 보험금과 평생 모은 적금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처음에 출금이 됐던 60만원은 다른 피해자의 돈을 돌려막기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이 씨를 속인 딥페이크 로맨스 스캠 조직의 핵심 수법을 분석했습니다.
- 딥페이크 영상통화: AI 기술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실시간 영상통화까지 수행합니다. 더 이상 "영상통화했으니 안전하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 정교한 가상 신원 설정: 혈액형, 학력, 부모 직업, 취미까지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가짜 인물에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 기업형 분업 조직: 채팅팀(연인 역할), 딥페이크팀(영상 합성), 유튜브팀(가짜 콘텐츠), 댓글팀(조작), 자금세탁팀 등 6개 이상 팀이 조직적으로 운영됩니다.
- 가짜 투자 수익 체험: 처음 소액은 실제로 출금되게 하여 신뢰를 쌓은 뒤, 큰 금액이 들어오면 사이트를 폐쇄합니다(폰지 사기 구조).
- 가짜 유튜브 채널과 댓글: 전문가처럼 보이는 투자 유튜브 채널과 수익 인증 댓글까지 모두 조작합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영상통화도 믿지 마세요: 2026년 현재, 딥페이크 기술로 실시간 영상통화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영상통화만으로 상대를 확신하지 마세요.
- 직접 만나기 전까지 돈을 보내지 마세요: 아무리 오래 연락했더라도,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송금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 연인이 투자를 권유하면 100% 의심하세요: 진짜 연인은 만난 적도 없는 상대에게 투자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연애와 투자가 결합되면 무조건 사기입니다.
- 소액 출금 성공에 속지 마세요: 처음 소액이 출금되는 것은 큰 돈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입니다. 이것은 폰지 사기의 전형적 수법입니다.
- 금융감독원 미등록 거래소는 이용하지 마세요: 정식 등록 거래소인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반드시 확인하세요.
- 유튜브 투자 정보와 댓글도 조작됩니다: 수익 인증 댓글, 전문가 분석 영상도 사기 조직이 만든 것일 수 있습니다.
- 주변에 반드시 알리세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알리세요. 객관적 시선이 사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피해를 당했다면
딥페이크 로맨스 스캠은 고도로 훈련된 국제 범죄 조직의 계획적 범행입니다. 스스로를 탓하지 마시고,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센터 18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전화하여 피해 상담 및 계좌 지급정지 요청
- 증거 보존: 채팅 내역, 송금 내역, 거래소 화면 캡처, 유튜브 채널 URL 등 모든 증거 확보
- 2차 피해 주의: "피해금 복구해주겠다"며 접근하는 화이트해커 사칭 2차 사기에 주의하세요
- 심리 상담: 로맨스 스캠 피해자는 금전적 손실 외에 극심한 배신감과 자괴감을 겪습니다. 전문 상담을 반드시 받으세요.
이 사연은 2026년 1월 울산경찰청이 수사 중인 캄보디아 거점 딥페이크 로맨스 스캠 사건(피해자 104명, 피해액 120억 원)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딥페이크 기술의 발달로 영상통화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만난 적 없는 사람이 투자를 권유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