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찾아온 외로움, 그리고 뜻밖의 메시지
올해 54세인 이○○ 씨(가명)는 3년 전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전처가 양육하고 있었고, 주말이면 텅 빈 원룸에서 TV만 바라보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뜸해지고, 직장에서도 말수가 줄어가는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씨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에 채팅 앱 하나를 설치했습니다. 별다른 기대 없이 프로필을 만들었는데, 이틀 만에 한 여성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프로필 사진이 정말 따뜻해 보여서 말 걸어봐요. 저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제시카예요."
프로필에는 밝은 미소의 30대 후반 여성 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 씨는 외국인이 자신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매일 밤 이어진 달콤한 대화
처음에는 간단한 인사만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대화의 깊이가 달라졌습니다. 제시카는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여보"라는 메시지로 하루를 시작했고, 밤에는 "오늘 하루 어땠어요?"라며 이 씨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이혼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처럼 따뜻한 사람이 혼자 있으면 안 돼요."
이 씨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것이 몇 년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전처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위로의 말들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제시카는 자신의 일상도 공유했습니다. 병원에서 찍은 셀카, 요리 사진, 반려견 사진까지. 모든 것이 진짜처럼 보였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여보", "허니"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씨는 정말로 사랑에 빠졌다고 느꼈습니다. 화상통화를 하자는 제안에는 "병원 근무 시간이 불규칙해서 어려워요", "곧 한국에 갈 거니까 그때 직접 만나요"라며 매번 피했지만, 이 씨는 크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시작된 금전 요구, 그리고 커져가는 덫
어느 날, 제시카가 흥분된 어조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보! 병원에서 2주 휴가를 받았어요! 드디어 한국에 갈 수 있어요! 당신을 직접 만나고 싶어요!"
이 씨의 가슴이 뛰었습니다. 드디어 제시카를 만날 수 있다니.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며칠 뒤 제시카가 곤란한 표정의 셀카와 함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비행기 표를 예약하려는데, 이번 달 병원비를 많이 써서 카드가 한도 초과됐어요. 200만원만 빌려줄 수 있을까요? 한국 도착하면 바로 갚을게요."
이 씨는 잠시 망설였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만나러 오겠다는데 200만원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송금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이번에는 "경유지 공항에서 세관에 걸렸다"며 세관 보증금 300만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한국 입국 전 PCR 검사와 건강검진 비용" 150만원. 그다음에는 "여권 분실로 재발급 비용" 250만원. 또 그다음에는 "호텔 예약 보증금" 200만원.
매번 합리적인 이유가 붙었고, 매번 "곧 만날 수 있어요"라는 기대감이 이 씨의 판단력을 흐렸습니다. 이 씨는 퇴직금으로 모아둔 적금을 해약하고, 심지어 지인에게까지 돈을 빌렸습니다.
2개월 동안 총 15차례에 걸쳐 송금한 금액은 2,100만원에 달했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진실, 무너진 세계
열다섯 번째 송금 뒤, 이 씨는 또다시 "수하물 세관 통관비" 500만원을 요구받았습니다. 이번에는 금액이 너무 컸고, 더 이상 보낼 돈도 없었습니다.
"제시카, 나도 더 이상 여유가 없어. 이번엔 정말 힘들어."
그러자 갑자기 제시카의 태도가 변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방법을 찾아야죠. 대출이라도 받아보세요. 내가 한국 가면 다 갚아줄게요."
이 말에 이 씨는 처음으로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주말에 혼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로맨스 스캠"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겪은 것과 거의 똑같은 피해 사례들이 수두룩했습니다. 비행기값, 세관비, 병원비... 요구하는 명목까지 판에 박은 듯 같았습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송금한 돈은 이미 동남아시아의 여러 계좌를 거쳐 사라진 뒤였습니다. 제시카의 프로필 사진은 해외 소셜미디어에서 도용한 다른 사람의 사진이었고, 그동안 보내온 일상 사진들도 모두 인터넷에서 수집한 것이었습니다. 제시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이 씨를 속인 로맨스 스캠 조직의 핵심 수법을 정리했습니다.
- 채팅앱 접근: 데이팅앱, 카카오톡 오픈채팅, SNS 등에서 먼저 말을 걸어옴
- 장기 감정 투자: 1~2개월간 매일 대화하며 "여보", "사랑해"로 심리적 유대 형성
- 화상통화 회피: "시간이 안 맞아", "곧 직접 만나자"며 영상 통화를 계속 미룸
- 만남 빌미 금전 요구: 비행기값, 세관비, 병원비 등 한국에 오기 위한 비용 명목
- 소액에서 대액으로: 처음에는 100~200만원, 점차 금액을 높이며 반복 요구
- 심리 압박: "사랑한다면 도와줘야지"라며 죄책감 유발
- 조직적 범행: 실제로는 동남아시아 기반 범죄 조직이 역할을 나눠 운영
최근 경찰 수사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범죄 건수는 2024년 76건에서 2025년 313건으로 약 4배 급증했으며, 피해액은 연간 1,0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AI 딥페이크 기술까지 동원되어 화상통화로도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이 먼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면 경계하세요
- [ ]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절대 돈을 보내지 마세요
- [ ] 화상통화를 계속 거부하는 상대는 의심하세요
- [ ] "비행기값", "세관비", "병원비" 요구는 로맨스 스캠의 전형적 패턴입니다
- [ ] 상대의 프로필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확인해 보세요
- [ ] "사랑한다면 돈을 보내야 한다"는 말은 100% 사기입니다
- [ ] 외로울 때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반드시 가족이나 친구에게 먼저 상의하세요
- [ ] 송금 요청을 받으면 일단 3일 이상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추가 송금 즉시 중단: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더 이상 돈을 보내지 마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경찰청 사이버수사국(https://ecrm.police.go.kr)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피해 계좌 지급정지 요청)
- 증거 보존: 채팅 내역, 프로필 사진, 송금 내역 모두 캡처
- 해당 플랫폼 신고: 사기범의 계정을 플랫폼에 신고
2026년 1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을 저지른 조직의 총책 부부가 국내에 강제 송환되어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같은 달, 한국인 73명이 캄보디아에서 전세기로 강제 송환되었으며, 이 중 70명이 로맨스 스캠 등 사기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피해를 당했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로맨스 스캠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외로움과 사랑을 이용하는 잔인한 범죄입니다. 교수, 의사, 기업인 등 학력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2025년 11월에도 서울 강동구에서 순찰 경찰이 중년 남성의 로맨스 스캠 피해를 막은 사례가 있었고, 2026년 1월에는 전북 익산에서 70대 여성의 1,000만원 피해를 은행 직원과 경찰이 합동으로 차단한 사례가 보도되었습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이 사연은 2025~2026년 실제 보도된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들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과 일부 각색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