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DM 한 통으로 시작된 두 달의 악몽
이준혁 씨(가명, 44세)는 서울에서 제조업체 영업관리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주말 오후, 소파에 앉아 인스타그램을 넘기던 그에게 낯선 DM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 홍콩에서 일하는 리아예요. 사진 보다가 인상이 좋아 보여서 연락해봤어요. 친구 해도 될까요?"
프로필에는 단정한 인상의 여성 사진들이 가득했다. 팔로워도 수백 명, 게시물도 꾸준히 올라와 있었다. 이 씨는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편안한 일상 대화가 오가다 보니 어느새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영상통화, 그리고 굳어버린 믿음
한 달이 지날 무렵, '리아'가 영상통화를 먼저 제안했다. 화면에 나타난 여성은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표정이 살아있고, 홍콩의 고층 아파트 배경도 선명했다. 이 씨의 남은 의심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그것이 AI 딥페이크 기술로 실시간 합성된 가짜 얼굴이라는 사실을 이 씨는 꿈에도 몰랐다. 2026년 들어 국제 사기 조직들은 실시간 딥페이크 영상통화 기술을 도입해 피해자의 신뢰를 높이는 신종 수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 이를 실시간으로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후 두 달 동안 '리아'는 매일 아침 인사와 저녁 안부를 빠짐없이 보냈다. 이 씨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깊어졌다.
소액 성공이 만든 달콤한 함정
어느 날 '리아'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준혁 씨, 저 사실 요즘 코인으로 용돈 벌이 좀 하고 있어요. 저만 쓰는 거래소인데... 같이 해볼래요? 제가 직접 알려드릴게요."
'리아'는 특정 앱을 설치하도록 안내했다. 처음에는 100만원을 입금했다. 화면에는 수익이 쌓이는 것이 보였고, 50만원 출금을 시도하자 실제로 통장에 입금되었다. 이 씨는 확신했다.
'진짜 되네. 리아가 나한테 진심으로 알려준 거구나.'
이후 투자금은 빠르게 불어났다. 500만원, 1,500만원, 3,000만원. 화면 속 잔고는 수익률을 올리며 빛났다. 이 씨는 적금을 해지하고 신용대출까지 받았다.
출금 차단, 그리고 사라진 '리아'
총 투자금이 4,800만원에 이르던 날, 이 씨는 처음으로 큰 금액의 출금을 시도했다. 화면에 오류 메시지가 떴다.
"출금 처리를 위해 소득세 선납이 필요합니다. 수익금의 20%를 먼저 납부해 주세요."
수백만 원의 세금을 더 내라는 요구였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씨는 앱 이름을 검색했다. 어디에도 정식 등록된 거래소가 아니었다. 사기 피해 커뮤니티에는 이 씨가 겪은 것과 똑같은 수법이 수십 건이나 올라와 있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리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달이 되지 않았다. 두 달 동안 매일 연락하던 계정이 흔적도 없이 삭제되어 있었다.
피해 신고,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돈
이 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담당 수사관의 말은 냉정했다.
"이 수법은 '돼지도살 스캠(Pig-butchering Scam)'입니다. 감정을 쌓은 뒤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죠.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에 기반을 둔 국제 조직이라 자금 추적이 매우 어렵습니다."
4,800만원. 3년간 모은 적금과 신용대출을 합친 금액이었다. 이 씨는 지금도 매달 대출 이자를 갚고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국내 남성 피해자들이 이 수법으로 잃은 돈은 약 1,0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SNS 이성 접근: 외국인 이성이 SNS DM으로 먼저 접근해 장기간 관계를 쌓습니다
- AI 딥페이크 영상통화: 실시간으로 얼굴을 합성해 실제 인물인 것처럼 속입니다
- 소액 출금 미끼: 처음엔 실제로 출금을 허용해 신뢰를 만든 뒤 거액 투자를 유도합니다
- 가짜 거래소: 공식 앱스토어에 없는 링크 배포 앱으로 입금을 유도합니다
- 추가 납부 요구: 출금 시도 시 세금·수수료 명목으로 추가 금액을 요구한 뒤 잠적합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SNS DM으로 먼저 접근하는 외국인은 사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정이 생기기 전에 냉정하게 판단하세요
- [ ] 영상통화를 해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AI 딥페이크 기술은 실시간으로 얼굴과 목소리를 합성할 수 있습니다
- [ ] 온라인에서만 만난 사람이 투자를 권유하면 반드시 의심하고 즉시 대화를 중단하세요
- [ ] 소액 출금을 먼저 허용하는 것은 신뢰를 얻기 위한 전형적인 미끼 수법입니다
- [ ] 코인 거래소는 금융정보분석원(FIU)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현황에서 등록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세요
- [ ] 출금 시 세금·보증금·수수료 등 추가 납부를 요구하는 거래소는 100% 사기입니다
- [ ] 투자 결정 전 반드시 가족이나 지인에게 먼저 상의하세요. 사기범은 항상 비밀을 강요합니다
피해를 당했다면
- 경찰 신고: 112 또는 사이버범죄 신고 포털(ecrm.police.go.kr)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 계좌 지급정지: 입금한 은행 고객센터에 즉시 신청
- 증거 보존: 앱 화면, 대화 내역, 입금 내역, 상대방 계정 모두 캡처
- 2차 사기 주의: 피해금 환수를 도와준다는 추가 연락은 동일 조직의 2차 사기입니다
이 사연은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