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올해 67세인 최○○ 씨(가명)는 경기도 수원에서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부부는 틈틈이 영상통화로 안부를 나눕니다. 2026년 3월 어느 날 오전, 최 씨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떴습니다.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팀입니다. 고객님 명의 계좌가 불법 자금 세탁에 이용된 것으로 확인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상대방은 차분하고 정중한 목소리였습니다. 사건 번호와 담당자 이름까지 불러주었습니다. 최 씨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싶어 말을 잃었습니다.
검찰까지 나섰다는 압박
전화는 금감원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이번엔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최 씨, 이 사건은 이미 검찰로 넘어왔습니다. 금감원 조사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계좌가 동결되고 출국 금지가 내려집니다. 수사 기간 동안 자산을 보호하려면 지정 계좌로 이체해야 합니다."
최 씨는 '계좌 동결'이라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남편 모르게 처리하고 싶었습니다. 상대방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리면 공범으로 처리될 수 있다"며 절대 비밀로 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아들 영상통화에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최 씨가 주저하자, 사기범은 예상치 못한 한 수를 꺼냈습니다. 카카오톡 영상통화 알림이 울렸습니다. 화면에는 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엄마, 나야. 괜찮아, 경찰 협조 잘 해줘. 거기 수사관분들 믿어도 돼."
아들의 얼굴이었습니다. 목소리도 아들이었습니다. 최 씨는 그 순간 모든 의심을 거뒀습니다. 아들이 직접 영상통화로 확인해주는데, 더 이상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기범들은 아들의 SNS에 올라있던 사진과 짧은 영상 클립을 수집해 AI 딥페이크 기술로 실시간 영상통화용 가짜 얼굴을 만들었고, 딥보이스로 목소리까지 복제한 것이었습니다. 최 씨는 5,000만원을 지정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25일간 전국 10명, 34억이 사라졌다
최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수법을 쓴 조직은 2026년 3월부터 4월까지 단 25일 사이에 전국에서 10명의 피해자를 만들었습니다. 총 피해액은 34억 6,700만원이었습니다.
이 조직은 철저히 역할이 나뉜 다단계 구조였습니다. 전화를 거는 '콜센터팀', 현금을 받아 전달하는 '수거·전달책', 그리고 텔레그램으로 지시를 내리는 상위 조직. 수거·전달책은 신원 확인도 안 된 채 아르바이트처럼 채용되어, 자신이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강동경찰서가 수사에 나서 수거·전달책 7명을 검거하고 이 중 3명을 구속했습니다. 약 8억 7,000만원이 압수되었지만, 나머지 25억 이상은 이미 해외로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충격적인 진실
최 씨가 사기를 알게 된 건 송금 이틀 후였습니다. 아들이 직접 찾아왔을 때, 아들은 영상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생생하게 아들의 얼굴을 봤기 때문입니다.
경찰에서 설명을 들은 후에야 현실이 받아들여졌습니다. AI 딥페이크 기술이 SNS 사진 몇 장으로 아들의 얼굴을 만들어냈다는 것, 딥보이스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 속 아들의 목소리를 복제했다는 것. 5,000만원, 30년 넘게 모은 노후자금의 일부였습니다.
"아들 얼굴을 직접 봤는데 어떻게 의심합니까.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몰랐습니다."
AI 딥페이크·딥보이스 보이스피싱, 무엇이 달라졌나
기존 보이스피싱은 목소리만으로 속이거나, 가짜 서류를 문자로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2026년의 신종 수법은 다릅니다.
딥보이스: 2~5초 분량의 음성 샘플만으로 특정인의 말투, 억양, 감정까지 복제합니다. SNS 영상, 유튜브 댓글, 심지어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의 "여보세요" 한 마디만으로도 목소리 탈취가 가능합니다.
딥페이크 영상통화: 실시간 영상통화에서 가짜 얼굴을 합성해 보여줍니다. 조명이 어둡거나 화질이 낮을수록 구별이 더 어렵습니다. SNS에 공개된 사진 10~20장이면 충분합니다.
이 두 기술이 결합되면, 목소리와 얼굴 모두 가족처럼 보이는 가짜가 만들어집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가족끼리만 아는 비밀 암호를 미리 정해두세요. 급한 상황일수록 반드시 암호를 확인하세요
- 영상통화 도중 얼굴이 끊기거나 화질이 갑자기 나빠지면 딥페이크를 의심하세요
- 공공기관(검찰, 경찰, 금감원)은 전화로 계좌 이체나 현금 수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 "가족에게 말하면 공범"이라는 말은 100% 사기입니다. 즉시 가족에게 알리세요
- 영상통화로 가족이 확인해줘도, 별도 문자나 직접 전화로 다시 확인하세요
- SNS의 음성·영상 공개 범위를 '친구'나 '비공개'로 설정하세요
- 모르는 번호 전화에 "여보세요"를 길게 말하지 마세요. 짧게 끊으세요
- 급히 결정하라는 압박은 냉정하게 거부하고, 가까운 은행이나 경찰서에 직접 방문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사기임을 알게 된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계좌 지급정지: 송금한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해 즉시 지급정지를 요청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를 접수하세요
- 증거 보존: 통화 내역, 문자, 영상통화 스크린샷, 송금 영수증을 모두 저장하세요
- 개인정보 노출 신고: 금융감독원 개인정보 노출자 사고예방시스템에 등록하세요
이 사연은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