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묶여 있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상당수는 돈을 보낸 뒤 이렇게 생각한다. 이미 빠져나갔으니 찾을 길이 없다고.
그런데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2026년 9월 29일 밝힌 내용은 달랐다. 피해금 일부가 가상자산 거래소 계정에 동결된 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두 곳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피해금이 은행 계좌를 거쳐 거래소로 넘어가면, 거래소는 은행에서 피해자 정보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돈을 묶어 두고도 돌려줄 수 없었다. 피해자도 돈이 거래소로 넘어간 줄 몰라 환급을 신청하지 못했다.
70대 자영업자의 2025년 5월
경찰이 환급한 피해자 중 한 명은 70대 자영업자였다. 2025년 5월, 수원지검 검사를 사칭한 전화가 걸려 왔다.
"범죄에 연루됐으니 모든 자산을 조사해야 한다"
자산을 조사한다는 말에 그는 지정된 계좌로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가 이체한 금액은 8억5000만원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돈은 집을 담보로 마련한 자금과 가족에게 빌린 돈 등으로 채워졌다.
큰돈이었지만 사칭범은 수사라는 이름으로 이체를 요구했다. 수사기관이 개인에게 돈을 옮기라고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범죄 연루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이를 따져 보기는 쉽지 않다.
회수를 포기하고, 혼자 견디다
그는 피해를 신고했다. 하지만 은행 계좌에는 남은 돈이 없었다. 결국 회수를 포기했다.
더 힘든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는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가족에게 빌린 돈까지 잃은 상황에서 자책에 시달렸다고 한다. 피해자가 혼자 떠안을 이유는 없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침묵이 적지 않다.
그 돈의 일부는 가상자산 거래소로 넘어가 있었다. 훗날 경찰의 추적으로 그는 4300만원을 돌려받았다. 잃은 돈 전부는 아니지만, 포기했던 돈이 돌아왔다.
암 진단비 300만원을 보낸 56세
또 다른 사례도 있다. 56세 피해자는 2025년 6월, 주식 전문가를 사칭한 일당에게 300만원을 송금했다. 배우자의 암 진단비로 받은 돈이었다.
이 피해자 역시 회수를 포기했다가 230만원을 환급받았다. 금액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 돈이 어떤 돈이었는지는 피해자만 안다.
3년간의 추적
경찰은 2023년 9월부터 2026년 9월 15일까지 피해자 1137명에게 약 263억원을 환급했다. 대상은 2017년부터 2025년 8월까지 5대 가상자산 거래소 계정에 동결돼 있던 피해금 대부분이다.
처음 확인한 동결 피해금은 122억원이었다. 하지만 추적하는 동안 더 많은 동결 피해금이 드러났다. 경찰은 거래소 전자지갑 1050개와 은행 계좌 16만3000개의 자금 흐름을 살폈다. 환급 대상이 된 피해자에게는 서면, 전화, SNS, 방문으로 통지했다.
동결 기간은 최대 6개월이다. 경찰은 동결이 풀린 뒤 피해금 약 30억원대가 임의로 인출된 사례를 확인했고, 계정 명의자 130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현재 수사 중이다.
2026년 10월 1일부터는 가상자산사업자를 금융회사에 포함하는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시행됐다. 은행과 거래소 사이의 정보 공유와 환급 절차가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연에서 기억할 것
수사기관은 전화로 돈을 보내라고 하거나, 자산을 조사한다며 이체를 시키지 않는다. 이 한 가지만 기억해도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112에 신고하고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돈이 가상자산으로 넘어갔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신고와 환급 절차를 확인하자. 피해 사실을 혼자 숨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상담은 112 또는 금융감독원 콜센터 1332에서 받을 수 있다.
이 글은 경찰이 공개하고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피해자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