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장이라는 문자 한 통
세종시에 사는 이○○ 씨(가명, 30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법원 사무관입니다. 이○○ 씨 앞으로 소환장이 발송됐는데 확인이 안 되고 계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상대는 차분한 목소리로 사건번호를 불러주며, 형사사법포털에서 직접 확인해보라고 했다. 이 씨는 곧이어 사건번호가 선명하게 찍힌 공문서를 받았다. 실제 정부 문서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본인 명의로 개설된 비밀계좌가 대규모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 씨는 법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서류에는 낯선 사건 정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검사, 그리고 원격제어 앱
전화는 곧 "검사"라는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는 "수사에 협조해야 무혐의로 끝날 수 있다"며 중고 휴대전화를 하나 구매하라고 지시했다. 이 씨는 시키는 대로 중고폰을 샀다. 그 위에 원격제어 앱을 설치하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이건 수사 보안을 위한 절차입니다. 지금부터 신변 보호 차원에서 지정된 숙소에 머무르셔야 합니다."
이 씨는 그 길로 짐을 챙겨 호텔에 체크인했다. "가족에게 알리면 수사 기밀 누설로 간주돼 형량이 늘어난다"는 협박도 뒤따랐다.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이 씨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호텔 방 안에 가뒀다. 외출은 금지됐다. 매시간 전화로 "지금 어디 있느냐", "누구와 있느냐"는 확인이 이어졌다.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지시도 받았다.
은행 직원의 경고마저 의심하게 만든 세뇌
"허위 진술을 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오늘 중 약식기소 절차를 밟지 않으면 구치소로 이송됩니다."
공포는 매일 커졌다. 이 씨는 은행 창구를 찾아 돈을 인출하고 이체하기 시작했다. 은행 직원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혹시 보이스피싱 아니냐"며 재차 확인했지만, 이 씨는 오히려 전화 속 목소리를 믿었다.
"은행이 계좌를 막으려는 것도 공범들의 방해 공작입니다. 절대 흔들리지 마세요."
사기범은 은행 직원의 경고마저 사건의 일부로 둔갑시켰다. 이후 전화는 "금융감독원 과장"을 자처하는 사람으로 넘어갔다. "자산을 안전 계좌로 옮겨야 압류를 피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의심을 피하기 위해 10회에 걸쳐 나눠 송금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일주일 사이 이 씨의 전 재산 1억 3,590만 원이 10차례로 쪼개져 빠져나갔다. 사기범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8,700만 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송금하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은행 시스템이 이상 거래를 감지해 계좌를 정지시키면서 추가 피해는 가까스로 막혔다.
사건번호 조회, 뒤늦게 드러난 진실
계좌가 막히자 이 씨는 처음으로 의심을 품었다. 형사사법포털 공식 앱을 직접 열어 그동안 받았던 사건번호를 검색해봤다. 결과는 "조회되는 사건이 없습니다."
일주일간 자신을 가둬온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이 씨는 그제야 가족에게 상황을 알리고 2026년 7월 18일 세종남부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전형적인 검찰·법원 사칭형 보이스피싱, 이른바 "셀프 감금형" 수법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법원·검찰 사무관 사칭 전화로 소환장·사건번호를 언급하며 신뢰를 얻는다.
- 정교하게 위조된 공문서로 "본인 명의 비밀계좌 범죄 연루"를 조작한다.
- 중고폰 구매 후 원격제어 앱 설치를 유도해 통제력을 확보한다.
- "신변 보호", "수사 보안"을 내세워 호텔 등에 스스로 고립되게 만든다.
- 가족에게 알리면 불이익이 있다며 신고·상담을 원천 차단한다.
- 은행 직원의 경고까지 "공범의 방해"로 세뇌해 마지막 안전장치를 무력화한다.
- 의심을 피하기 위해 거액을 여러 차례로 쪼개 송금하도록 지시한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법원, 검찰, 금융감독원 등 어떤 공공기관도 전화로 원격제어 앱 설치나 호텔 투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사건번호를 받았다면 즉시 형사사법포털 공식 앱·사이트에서 직접 조회하세요
-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은 그 자체로 사기의 강력한 신호입니다
- 은행 직원이 인출·이체를 제지하거나 의심하면, 그 자리에서 반드시 걸음을 멈추고 확인하세요
- 여러 차례로 나눠 송금하라는 지시는 감시망을 피하려는 전형적 사기 패턴입니다
- 중고 휴대전화 구매나 앱 설치를 요구받으면 즉시 통화를 끊으세요
- 급하게 결정하라는 압박, 매시간 상태를 보고하라는 요구는 정상적인 수사 절차가 아닙니다
피해를 당했다면
사기 피해가 의심된다면 아래 절차를 즉시 진행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 방문 신고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즉시 문의
- 계좌 지급정지: 거래 은행 콜센터에 즉시 요청
- 증거 보존: 통화 녹음, 문자, 공문서, 송금 내역을 모두 캡처해 보관
- 형사사법포털 확인: 사건번호를 받았다면 공식 채널로 반드시 재확인
이 사연은 실제 보도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