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까지 열흘, 통장 잔액은 0원
박민준 씨(가명, 34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다. 불규칙한 일감, 들쑥날쑥한 수입. 이달 초 허리를 다쳐 열흘을 쉬었더니 통장이 바닥났다.
월세는 밀렸고, 카드 결제일은 코앞이었다. 100만원만 있으면 됐다. 그것만 있으면 버틸 수 있었다.
은행 대출은 신용등급이 낮아 처음부터 포기했다. 지인에게 빌리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때 스마트폰으로 검색창에 '급전 소액 대출'을 쳤다.
플랫폼 안에서 찾은 '안전한' 선택지
검색 결과로 나온 대출 중개 플랫폼. 제법 깔끔한 디자인에, '금융위원회 등록 대부업체 모음'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박 씨는 그 문구를 보고 안심했다.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곳이면 합법이지 않나.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데 설마 사기겠어."
리스트 중 한 업체를 골랐다. 100만원, 30일 상환. 이자율은 '연 24%'라고 적혀 있었다. 클릭했다.
차용증 셀카와 가족 연락처, 왜 의심하지 않았나
업체 직원이라는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해왔다. 대출 진행을 위해 몇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분증 사진, 통장 사본은 당연한 줄 알았다. 그다음이 조금 이상했다.
"차용증을 작성하고 본인이 들고 있는 셀카를 찍어 보내주세요. 그리고 보증인 연락처 10명을 함께 주시면 바로 진행해드립니다."
박 씨는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직원은 능숙하게 설명했다.
"소액 대출이다 보니 신용 담보 대신 지인 연락처를 받는 거예요. 실제로 연락하는 건 아니고, 만약 연락이 안 될 때 비상 연락망으로만 쓰입니다. 합법적인 절차예요."
그럴듯하게 들렸다. 박 씨는 어머니, 누나, 친구들 번호 10개를 넘겼다. 그리고 차용증을 쓰고 셀카를 찍었다. 10분 뒤, 통장에 100만원이 들어왔다.
30일 후, 청구서에 적힌 숫자
한 달이 지났다. 박 씨는 갚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업체에서 보내온 금액은 100만원이 아니었다.
원금 100만원에 '이자와 수수료' 명목으로 38만원이 더 붙어 있었다. 한 달 이자율이 38%. 연으로 환산하면 456%였다.
박 씨가 항의하자 직원의 태도가 돌변했다.
"계약서에 서명하셨잖아요. 이의 있으시면 그냥 안 갚으셔도 됩니다. 대신 연락처에 있는 분들한테 차용증 셀카 다 뿌릴 거예요."
어머니의 전화
박 씨가 돈을 마련하느라 이틀을 버티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준아, 나한테 누가 카톡을 보냈는데... 네 사진이랑 '이 사람이 돈을 안 갚고 있다'는 내용이 왔어. 무슨 일이야?"
가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친구 두 명에게도 같은 메시지가 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박 씨는 그제야 인터넷을 뒤졌다. '차용증 셀카', '가족 연락처 협박'으로 검색하자 수십 건의 동일한 피해 사례가 나왔다. 합법 위장 불법사금융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뒤늦게 찾아간 경찰서
박 씨가 경찰에 신고한 뒤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해당 업체는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적이 없었다. 플랫폼에 허위로 '등록 업체'라고 속인 것이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2026년 6월, 이 조직의 일당 9명을 검거하고 3명을 구속했다. 피해자는 박 씨처럼 급전이 필요했던 46명, 피해액은 총 2억 원에 달했다.
조직은 피해자들을 대포통장 제공자로도 이용했다. 피해자가 피의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 구조였다.
합법 위장이 더 위험한 이유
박 씨가 당한 수법의 핵심은 '신뢰 포장'이었다. 검증된 플랫폼 안에 위장 등록함으로써, 피해자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차용증과 가족 연락처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협박 도구였다.
플랫폼에 등록되어 있다고 해서 합법이 아닙니다. 금융위원회 홈페이지(fine.fss.or.kr)에서 직접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피해를 당했다면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 불법추심 신고: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신고센터 1332
- 서민금융 상담: 서민금융진흥원 1397
- 증거 보존: 카카오톡 대화, 송금 내역, 차용증 사진 모두 캡처 보관
이 사연은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