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취업 소식을 기다리던 봄
박○○ 씨(가명, 54세)는 2025년 봄, 몇 년째 취업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던 조카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조카도, 지켜보는 가족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래 알고 지낸 지인 A씨(56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자동차 공장 정직원으로 넣어줄 수 있어."
A씨는 기아자동차 공장에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했다. 온라인 채용 공고를 통한 정식 지원이 아니라, 아는 사람을 통해 청탁으로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가까운 사이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A씨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사람이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A씨는 "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서둘러 돈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박씨는 조카의 취업이 걸린 일이라는 생각에, 지인의 말을 의심 없이 믿고 돈을 건넸다.
박씨만이 아니었다. A씨는 비슷한 시기 다른 지인들에게도 같은 말로 접근했다. 자녀나 조카의 취업을 걱정하던 지인들이 "대기업 정식 채용에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말에 하나둘 돈을 건넸다.
2025년 4월부터 9월까지, A씨는 이런 방식으로 여러 명의 지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챙겼다. 온라인 구인공고를 보여준 적도, 채용 담당자를 소개한 적도 없었다. 오직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뿐이었다.
면접도, 채용 통보도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채용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박씨는 A씨에게 연락해 진행 상황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
박씨는 뒤늦게 주변에 채용 절차를 확인했다.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의 정식 채용은 온라인 지원과 서류 전형, 인적성 검사, 면접을 거치는 공개 채용 절차로만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인을 통한 "청탁 채용"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박씨와 다른 피해자들이 A씨에게 건넨 돈은 모두 합쳐 2,300여만원에 달했다. 채용은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
법정에 선 지인, 그러나 돌아오지 않은 돈
사건은 결국 법정으로 넘어갔다. 광주지방법원 형사4단독 서지혜 판사는 2026년 9월 9일,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가 보상되지 않았으나, 범행을 모두 인정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기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고, 이번에는 극심한 생활고를 범행 이유로 댄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에게 남은 것은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벌 소식뿐, 잃어버린 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대기업 채용에는 '뒷문'이 없습니다
이 사건이 흔한 허위 채용공고형 사기와 다른 점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 가해자였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의심 없이 돈을 건네기 쉽고, 그만큼 피해도 커진다.
대기업의 채용 절차는 인맥이나 청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온라인 공고 없이 "아는 사람을 통해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제안은 그 자체로 의심해야 할 신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채용을 대가로 돈을 먼저 요구한다면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