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드인에서 온 반가운 연락
영국에 사는 A씨(가명)는 몇 달째 구직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력서를 수십 곳에 넣어도 답장이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링크드인 메시지함에 알림이 떴다.
채용 담당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A씨의 이력에 관심이 있다며 면접을 제안해왔다. 정식 채용 절차처럼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A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라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다.
진짜 같았던 화상 면접
면접은 실제 화상 통화로 진행됐다. 상대는 회사 소개와 직무 설명을 이어갔고, A씨는 여느 면접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화면 너머의 낯선 얼굴을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면접이 끝난 뒤 이어진 절차도 자연스러웠다. 담당자는 "기술 평가를 위한 과제가 있다"며 구글 스프레드시트 문서를 하나 보내왔다. 실제 구글 로그인 화면을 통해 열리는 문서였기에, 가짜라고 의심할 만한 요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잠든 사이 사라진 3200만원
A씨는 안내에 따라 문서 속 지시를 하나씩 따라갔다. 과제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 사이 해커들은 이미 A씨의 기기에 접근해 있었다.
문서 안에는 악성 소프트웨어가 숨어 있었다. A씨가 잠든 동안 해커들은 A씨의 암호화폐 계좌에 침투해 저축해둔 1만8000파운드(약 3200만원)를 모두 빼갔다.
다음 날 아침 A씨는 텅 빈 계좌를 확인하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A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돈을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고 말했다. 이어 "컴퓨터를 초기화하고 모든 비밀번호를 바꿨다"며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지쳤다"고 토로했다. A씨는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왜 알아채지 못했나
이 사건을 분석한 한 사이버보안 연구자는 이번 사례가 기존 피싱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상한 첨부파일이 붙은 허술한 이메일이 아니었다"며 "피해자는 실제 구글 페이지와 로그인 환경에서 진짜 면접처럼 보이는 과정을 거쳤고, 설치하라고 받은 소프트웨어도 정상적인 앱처럼 디지털 서명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화상 면접, 정식 로그인 화면, 정상 서명된 프로그램까지, 피해자가 의심할 만한 흔적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인디드로도 번진 가짜 앱 수법
비슷한 수법은 구인구직 플랫폼 인디드에서도 확인됐다. 범죄자들은 가짜 '인디드 인터뷰'나 '마이인터뷰'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지원자의 기기에 접근한다. 악성 앱이 설치되면 해커는 기기 안의 개인정보를 빼내 협박에 이용하거나 금융 범죄로 이어간다.
인디드 측은 "인디드 플랫폼의 면접은 모두 브라우저에서 이뤄지며 별도의 앱을 내려받을 필요가 없다"며 "면접에 참여하기 위해 앱을 설치하라는 메시지는 정상적인 요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링크드인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젊은 직장인 가운데 32%가 취업 관련 사기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 링크드인은 "취업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껴 의심할 여유조차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통계로 본 채용 사기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2025년 접수된 구직 사기·가짜 채용업체 신고는 13만건을 넘었다. 피해액은 6억 4300만달러(약 8677억원)로, 2022년(1억 7900만달러·약 2416억원)의 3.6배에 달한다.
링크드인은 2025년 하반기에만 가짜 계정 8900만개를 차단했다. 2022년 하반기(4500만개)의 두 배 수준이다. 신고된 사기 시도 메시지의 약 90%는 검증이 어려운 개인 메신저로 대화를 옮기려 했다.
미국 실업자들은 평균 6개월간 일자리를 찾고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 몬스터의 조사에서는 구직자의 절반가량이 자신이 받는 연락 대부분을 의심한다고 답했다.
다른 형태의 채용 사기도 존재한다. 장비 구입비 명목으로 가짜 수표를 먼저 보내는 수법, 신원조회 사이트로 유도해 30달러(약 4만원)와 각종 개인정보를 넘기게 하는 수법 등이다. 신원도용방지센터(ITRC)의 제임스 리 대표는 "당장 돈을 뜯지 않으면 장기전으로 가서 피해자 명의로 대출이나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거나, 여러 사람의 정보를 조각조각 모아 '합성 신원'을 만들어낸다"고 경고했다.
리 대표는 이런 흐름을 "1년 넘게 추적해온 흐름의 변종"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쯤 재택근무를 미끼로 한 가짜 문자가 등장했다면, 이제는 실제 채용담당자를 사칭해 특정 개인을 직접 겨냥하는 단계"라며 "AI가 사기의 양과 정교함을 동시에 키우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노리는 건 일자리를 급하게 구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A씨를 속인 사기범들의 핵심 수법을 정리했다.
- SNS 채용 사칭: 링크드인 등에서 채용 담당자를 사칭해 접근, 정식 면접처럼 화상 통화 진행
- 과제 위장 악성코드: 구글 스프레드시트 등 정상 문서로 위장한 파일에 악성 소프트웨어 은닉
- 정상 서명 앱 유도: '인디드 인터뷰', '마이인터뷰' 등 정상 앱처럼 디지털 서명된 가짜 프로그램 설치 유도
- 메신저 이동 유도: 검증이 어려운 개인 메신저로 대화를 옮기자고 제안
- 점진적 정보 수집: 신원조회 사이트, 가짜 수표 등으로 개인정보와 소액을 함께 요구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채용 담당자가 SNS로 먼저 연락해와도 회사 공식 채널로 재확인하세요
- [ ] 급여·조건이 지나치게 좋거나 경력이 자리에 딱 들어맞으면 의심하세요
- [ ] 프로필 사진이 AI로 만든 것처럼 부자연스럽거나 활동 이력이 없는 계정은 주의하세요
- [ ] 회사 공식 도메인이 아닌 이메일 주소로 온 연락은 재확인하세요
- [ ] 면접·과제를 이유로 별도 앱 설치를 요구하면 즉시 중단하세요
- [ ]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서나 파일은 실행 전 백신 프로그램으로 검사하세요
- [ ] 채용 과정에서 대화를 개인 메신저로 옮기자는 제안은 거절하세요
- [ ] 지원·면접 과정에서 어떤 명목으로든 돈이나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사기를 의심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 경찰 신고: 112 또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 1394
- 사이버범죄 신고: 경찰청 사이버수사국(ecrm.police.go.kr)
- 악성코드 감염 신고·상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118
- 금융 피해 신고: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신고센터 1332, 금융소비자정보포털 파인(fine.fss.or.kr)
- 증거 보존: 채용공고, 대화 내용, 전달받은 파일·링크를 모두 캡처해두세요
취업난 속에서 찾아온 기회처럼 보였던 연락이 순식간에 모아둔 돈을 노리는 함정으로 바뀌었다. 화상 면접까지 진행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상대가 진짜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이 사연은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