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낯선 번호의 전화
올해 63세인 김태수 씨(가명)는 주말마다 서울 외곽의 텃밭을 가꾸는 평범한 은퇴자다. 작은 회사를 30년 넘게 다니다 퇴직한 뒤, 아내와 둘이서 조용히 살고 있는 그에게 사기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올봄 어느 토요일 오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나야. 지금 차 사고가 났어. 폰이 부서져서 친구 거 빌려 쓰고 있어."
목소리는 영락없이 딸 혜진(가명)이었다. 말버릇, 억양, 숨소리까지. 김 씨는 단 1초도 의심하지 않았다.
딸의 목소리, 하지만 딸이 아니었다
전화 속 '혜진'은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교차로에서 접촉사고가 났는데 상대방이 합의금을 즉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을 부르면 보험료가 오른다며 현금 합의를 종용하고 있다고 했다.
"아빠, 300만 원만 지금 바로 보내줘. 저녁에 집에 가면 다 설명할게."
김 씨는 서둘러 인터넷 뱅킹을 열었다. 딸이 불러준 계좌번호로 300만 원을 이체했다. 손이 떨렸지만, 딸이 괜찮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30분쯤 지나 김 씨는 딸의 원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혜진은 아무 사고도 없었다고 했다. 텃밭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가슴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목소리 하나로 신뢰를 빼앗는 AI 기술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사기범들은 혜진의 SNS와 유튜브에서 수집한 15초가량의 음성 클립을 AI 프로그램에 학습시켜 목소리를 복제했다. 억양, 말투, 심지어 감정 표현까지 재현된 수준이었다.
최근 이런 수법은 더 정교해지고 있다. 영상통화에서 얼굴까지 딥페이크로 합성해 의심을 원천 차단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공공기관 직원을 사칭할 때는 위조 공문서와 명함을 함께 전송해 신뢰도를 높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로 가족과의 상담을 차단하는 것도 전형적인 수법이다.
50대 이상 피해 건수는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가족에 대한 신뢰가 깊고,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세대가 특히 취약하다.
사기임을 깨달은 순간
김 씨는 그날 저녁 딸 혜진과 마주 앉아 통화 내용을 재현해 봤다. 딸은 고개를 저었다.
"아빠,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 내 목소리가 맞아?"
녹음을 들은 혜진도 처음에는 자신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체된 300만 원은 이미 여러 계좌를 거쳐 해외로 빠져나간 뒤였다. 환급 가능성은 낮다는 통보를 받았다.
피해를 당했다면
딥페이크 음성 사기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 방문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지급정지 요청)
- 은행 고객센터: 송금 계좌 즉시 지급정지 요청
- 증거 보존: 통화 내역, 이체 내역, 문자 캡처 저장
이 사연은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