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낯선 번호가 울렸다
40대 자영업자 박○○ 씨는 평일 낮, 가게 일로 한창 바빴다. 중학생 아들과는 보통 하교 시간에나 통화하곤 했다.
그날따라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자마자 흐느끼는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나 아저씨한테 맞았어. 살려줘..."
목소리는 분명 아들이었다. 억양과 울음소리, 평소 아빠를 부르던 말투까지 똑같았다.
정확한 개인정보에 무너진 의심
곧이어 남성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그는 아들의 이름과 나이, 다니는 학교, 사는 동네까지 정확히 읊었다.
"아드님 데리고 있습니다. 신고하거나 전화 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박 씨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들 목소리를 직접 들었고, 개인정보까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의심할 틈이 없었다. 상대는 전화를 끊지 못하게 계속 말을 걸며 다그쳤다.
"신체 훼손하기 전에 빨리 입금하세요."
낮 시간이라 학교에 있어야 할 아들에게 직접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공포에 질린 박 씨는 상대가 불러주는 계좌로 급히 돈을 보냈다.
세 번에 걸쳐 반복된 요구
한 번 송금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상대는 "치료비가 더 필요하다", "합의금이 부족하다"며 추가 송금을 요구했다. 박 씨는 같은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두 번, 세 번 더 돈을 보냈다.
세 차례에 걸쳐 보낸 돈을 합치니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전화를 끊고서야 박 씨는 아들의 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어볼 생각을 했다.
교실에 있던 아들, 그제야 드러난 진실
학교 행정실을 통해 확인한 아들은 교실에서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다친 곳도, 납치된 적도 없었다.
그제야 박 씨는 자신이 들었던 울음소리가 아들의 진짜 목소리가 아니라 AI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짧은 통화 몇 초, 혹은 SNS에 올라온 영상 속 목소리만으로도 AI는 사람의 음성을 정교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송금한 돈은 이미 여러 계좌를 거쳐 빠져나간 뒤였다. 되찾을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전통적 보이스피싱을 넘어선 신종 수법
2025년 보이스피싱 전체 피해액은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AI 등을 활용한 신종 피싱 피해 규모는 이미 전통적인 보이스피싱 피해를 추월했다. 기관 사칭형 피해액만 놓고 봐도 2016년 541억원에서 2025년 9,884억원으로 약 18배 늘었다.
실제로 2025년 4월, 서울 지하철 7호선 내방역에서는 "엄마 살려줘"라며 우는 딸의 목소리로 1,000만원을 요구받은 한 시민이 80만원을 송금하려던 순간,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지하철 직원의 도움으로 피해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가족 목소리도 이제 안심할 수 없다
과거에는 목소리 자체가 신뢰의 근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짧은 음성 샘플만으로도 누구든 목소리를 복제할 수 있는 시대다. "목소리가 진짜니까 진짜 가족이다"라는 판단 기준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자녀나 가족의 위급 상황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을 때, 반드시 다른 방법으로 당사자와 직접 연락해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해를 당했다면
비슷한 전화를 받았거나 이미 송금했다면, 아래 순서로 즉시 대응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고, 통화 녹음이나 발신번호, 송금 계좌 정보를 증거로 제출하세요.
- 금융기관 지급정지 요청: 송금한 은행 콜센터에 즉시 연락해 계좌 지급정지와 피해금 환급을 신청하세요.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연락해 보이스피싱 피해 사실을 알리고 안내를 받으세요.
- 자녀·가족 안전 확인: 학교, 학원, 직장 등 자녀가 실제로 있어야 할 곳에 바로 연락해 안전을 확인하세요.
- 주변에 알리기: 비슷한 수법이 다른 가족에게도 시도될 수 있으니 지인들에게 사례를 공유하세요.
박 씨는 결국 송금한 돈을 대부분 돌려받지 못했다. "목소리까지 완벽했는데 어떻게 의심하냐"는 그의 말은, AI 기술이 가족 간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의 근거마저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연은 2026년 상반기 보도된 AI 음성복제(딥보이스) 활용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등장인물은 가상의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