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서 본 솔깃한 제안
이준영 씨(가명, 27세)는 6개월째 취업 준비 중이었다. 이력서는 쌓여갔지만 합격 소식은 없었다. 생활비마저 빠듯해지던 어느 밤, 그는 구직 정보를 찾다 텔레그램 채팅방에 흘러든 글 하나를 보았다.
"개인 통장·법인 통장 명의만 빌려주시면 4,500만원 지급. 숙식·항공권 전액 지원."
명의만 빌려주면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긴 했다. 하지만 "3주 정도 해외에서 서류 작업만 하면 된다"는 담당자의 설명에, 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연락처를 남겼다.
항공권 한 장, 그리고 시작된 감금
담당자는 친절했다. 여권 사본을 요청하더니 며칠 뒤 진짜 항공권을 보내왔다. "회사가 다 준비해 드립니다"라는 말에 이준영 씨의 경계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지난 5월, 그는 인천공항에서 캄보디아 프놈펜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는 낯선 남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들은 이준영 씨를 회사가 아닌 외곽의 한 숙소로 데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겼다. 그리고 통보했다.
"통장 개설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못 나간다."
그제야 이준영 씨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는 낯선 나라, 낯선 방에 갇힌 채 조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명의를 넘겨야 했다.
도망치려다 벌어진 일
숙소에는 이준영 씨 말고도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 여러 명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숙소 구조와 이동 경로를 몰래 휴대폰으로 촬영하다 발각됐다.
조직원들은 그를 다른 피해자들이 모두 보는 앞으로 끌고 나왔다. 폭행이 이어졌고, 그 장면은 영상으로 촬영돼 조직원들끼리 공유됐다. "너희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이준영 씨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후 6주 가까이 억류 생활이 이어졌다. 그의 명의로 개설된 통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겨져 팔려나갔다.
귀국 후 걸려온 진짜 무서운 전화
경찰의 국제 공조 수사로 조직이 검거되면서, 이준영 씨는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지만,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준영 씨 명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돼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캄보디아에서 감금·폭행당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의자이기도 했다. 통장을 빌려준 순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범죄에 이름을 빌려준 셈이 된 것이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통장 명의 대여 미끼: "명의만 빌려주면 큰돈을 준다"며 개인·법인 통장을 모집한다.
- 해외 고액 알바 위장: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하며 해외로 유인해 경계심을 낮춘다.
- 도착 즉시 신체 감금: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고 숙소에 감금해 물리적으로 통제한다.
- 본보기 폭행: 탈출을 시도하거나 사진을 찍은 피해자를 다른 피해자들 앞에서 폭행·고문해 공포를 조성한다.
- 통장 유통 판매: 탈취한 통장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개당 1,000만~2,000만원에 판매한다.
- 이중 피해 구조: 피해자는 감금·폭행 피해자이자, 동시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피의자 신분에 놓인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통장 명의만 빌려주면 큰돈을 준다"는 제안은 100% 사기이자 범죄입니다
- 이유를 불문하고 타인에게 본인 명의의 통장·계좌·카드를 빌려주거나 팔지 마세요
- 통장 양도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본인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숙식·항공권 무료 제공" 등 조건이 좋은 해외 고액 아르바이트는 우선 의심하세요
- 출국 전 채용 주체의 실체(사업자등록, 사무실 주소, 대표자 정보)를 직접 확인하세요
- 가족이나 지인에게 출국 목적지와 일정, 현지 연락처를 반드시 공유하세요
- 해외에서 여권이나 휴대폰을 빼앗기면 즉시 위험 신호로 인식하세요
- 이미 통장을 빌려줬다면 즉시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하고 경찰에 자진 신고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해외에서 감금되었거나, 귀국 후 본인 명의 통장이 범죄에 악용된 사실을 알게 됐다면 아래 방법으로 대응하세요.
- 영사콜센터 신고: 외교부 영사콜센터(+82-2-3210-0404)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됩니다.
- 경찰 신고: 112에 감금·강요 피해 사실과 통장 명의 도용 경위를 함께 진술하세요.
- 금융감독원 상담: 1332로 연락해 명의 도용 계좌 관련 조치를 안내받으세요.
- 자진 신고 고려: 협박에 못 이겨 통장을 빼앗겼더라도 자진 신고하면 정상 참작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혼자 판단하지 말고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이 사연은 2026년 6월 경찰이 발표한 캄보디아 대포통장 유통조직 검거 사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등장인물은 가상의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