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겸 사업가"라는 남자
39세 박○○ 씨(가명)는 몇 년째 작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던 자영업자였다. 사업 확장을 고민하던 어느 날, 지인 소개로 20대 남성 정 씨(가명)를 알게 됐다.
정 씨는 자신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지만 병원 개원을 준비 중인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젊은 나이에 의사이자 투자자라는 이력이 인상 깊었다.
"곧 개인 병원을 열 계획인데, 의료기기 수입과 가상화폐 사업도 같이 하고 있어요. 투자하시면 수익을 나눠드릴게요."
정 씨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사업 구상을 풀어놓았다. 박 씨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음이 흔들렸다.
완벽해 보였던 증거들
박 씨가 망설이자 정 씨는 휴대폰을 꺼내 서류 몇 장을 보여줬다. 의사국가시험 합격 내역, 수십억원대 자산을 보유했다는 증명서, 가상화폐 지갑 내역까지 있었다.
서류는 실제 기관 양식과 흡사했고, 숫자와 도장, 서명란까지 정교했다. 박 씨는 "이 정도 자산가라면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제가 이만큼 가진 사람인데, 사기 칠 이유가 있겠어요?"
정 씨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박 씨는 결국 병원 개원과 사업 확장 명목으로 투자를 결심했다. 2025년 8월부터 10월 사이, 박 씨가 정 씨에게 건넨 돈은 여러 차례에 걸쳐 총 3억 2천만원에 달했다.
돌려받지 못한 돈, 그리고 고소
약속한 수익 배분일이 지나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연락이 뜸해지던 정 씨는 점점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박 씨는 뒤늦게 이상함을 느끼고 정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 수사 끝에 정 씨는 사기 및 사문서위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박 씨는 이제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판사도 속은 위조 서류
그런데 반전이 벌어졌다. 정 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에 계좌 잔액증명서를 제출했다. 잔액은 9억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피해 금액을 전액 변제할 능력이 충분합니다."
판사는 이 서류를 근거로 "변제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 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사기를 당했는데, 가해자는 풀려났다.
23원짜리 진실
한 달가량 지나도 피해금은 변제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상함을 느끼고 보완수사에 착수했다. 은행 홈페이지의 제증명 발급조회 기록을 확인한 결과, 정 씨가 법원에 낸 잔액증명서는 실제 발급 내역과 달랐다.
검찰은 곧바로 해당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확인된 실제 잔액은 단돈 23원이었다. 9억원이라던 재산은 AI 이미지 생성 기능으로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정 씨는 결국 재구속돼 기소됐다. 의사 합격증과 자산증명서부터 법원에 제출한 잔액증명서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AI로 조작된 서류였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정 씨가 박 씨와 법원을 속인 핵심 수법을 정리했다.
- 권위 있는 신분 위조: 의사, 자산가 등 사회적 신뢰가 높은 신분을 AI 이미지로 조작
- 그럴듯한 사업 명목: 병원 개원, 의료기기 수입, 가상화폐 사업 등 확인이 어려운 사업 제시
- 시각적 증거의 함정: 서류가 정교할수록 사람은 쉽게 믿는다는 심리 이용
- 사법기관까지 속이는 대담함: 형사 절차 중에도 위조 서류로 법원 판단까지 조작하려 시도
- 뒤늦은 적발: 실제 계좌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구속영장 기각처럼 제도적 판단조차 흔들릴 수 있음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의사, 전문직 등 자격은 국시원·협회 등 공식 경로로 별도 확인하세요
- [ ] 상대가 보여주는 잔액·자산 증명서는 발급 은행에 직접 문의해 진위를 확인하세요
- [ ] "서류가 완벽하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하지 마세요. AI 위조 문서는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 [ ] 투자 전 사업계획서와 자금 사용처를 서면으로 받고, 변호사 등 제3자 검토를 받으세요
- [ ] 고수익 보장, 곧 병원을 연다는 등 확인 불가능한 미래 약속은 의심하세요
- [ ] 계약서, 사업자등록증, 법인 등기 등 공식 서류로 교차 검증하세요
- [ ] 송금 전 가족, 지인, 금융감독원(1332)에 상담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투자 사기나 신분 사칭 피해를 입었다면, 아래 순서로 대응하세요.
- 증거 보존: 대화 내용, 서류 사본, 송금 내역을 모두 캡처하고 보관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하세요.
- 금융감독원 신고: 1332로 연락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계좌 지급정지 등을 문의하세요.
- 변호사 상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 고소 절차를 함께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재판 진행 상황 확인: 가해자 측이 제출한 서류에 의문이 있다면 검찰·법원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출하세요.
박 씨는 여전히 3억 2천만원 중 돌려받은 돈이 거의 없다. "서류만 보고 믿었던 내가 잘못이었을까"라는 물음은, AI 기술이 사람의 신분과 재력, 그리고 법의 판단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경고로 남았다.
이 사연은 2026년 2월 보도된 실제 사건(부산지검 기소 사례)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등장인물은 가상의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