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 일상, SNS에서 찾은 위로
올해 43세인 박OO 씨는 서울의 한 IT 기업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2년 전 이혼을 겪은 뒤, 혼자 사는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지만 퇴근 후 텅 빈 집에 돌아올 때마다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친구들의 권유로 시작한 인스타그램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2025년 12월 초, 박 씨의 인스타그램에 한 외국인 남성이 팔로우 요청을 보냈습니다. 프로필 사진은 단정한 양복 차림의 40대 초반 남성이었고, 게시물에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도시 풍경, 고급 레스토랑 사진이 가득했습니다. 자기소개에는 'International Investment Consultant / Seoul lover'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요."
첫 DM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영어와 서툰 한국어를 섞어 보내온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박 씨는 호기심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점점 깊어진 감정, 그리고 영상통화
'제임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투자 컨설팅 회사의 임원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라는 메시지로 시작해, 밤에는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라며 일상을 물어왔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두 사람의 대화는 하루에 수십 통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박 씨가 가장 신뢰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영상통화였습니다. 2026년 1월 중순, 제임스가 먼저 영상통화를 제안했습니다. 화면 속 그는 프로필 사진과 동일한 얼굴이었고, 배경에는 고급 오피스가 보였습니다. 음성도 자연스러웠고, 표정도 생생했습니다.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합니다. 곧 서울에 갈 거예요."
영상통화에서 본 그의 미소는 따뜻했습니다. 박 씨는 이제 완전히 안심했습니다. '영상통화까지 했는데 사기일 리가 있겠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통화는 AI 딥페이크 기술로 실시간 합성된 가짜 얼굴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투자 권유
2026년 2월, 제임스는 자연스럽게 투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글로벌 펀드가 있는데, 지금 가입하면 월 15% 수익이 가능해요. 당신의 미래를 위해 추천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제임스는 압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투자 수익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주었고, 며칠 뒤에는 "당신도 한번 소액으로 시작해보세요"라며 전용 투자 앱 링크를 보내왔습니다.
박 씨는 100만원을 넣어보았습니다. 앱 화면에서 잔고가 3일 만에 120만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출금을 요청하자 정말로 120만원이 계좌에 입금되었습니다. 이것은 사기범들이 신뢰를 쌓기 위해 자신들의 돈으로 수익금을 보내주는 전형적인 수법이었지만, 박 씨는 이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역시 제임스가 추천한 거라 믿을 만하네."
다음에는 500만원, 그다음에는 1,000만원을 투자했습니다. 앱 화면의 잔고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제임스는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에요. 더 넣으면 VIP 등급이 되어서 수익률이 두 배가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2월 말까지, 박 씨가 넣은 돈은 총 4,800만원이었습니다. 비상금으로 모아둔 적금까지 해지한 금액이었습니다.
출금 버튼을 누른 순간, 무너진 세계
3월 초, 박 씨는 앱에서 보이는 수익금 중 일부를 출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앱 화면에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출금을 위해 세금 보증금 500만원을 먼저 입금해주세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임스에게 연락했더니, "시스템 문제일 뿐이에요. 보증금을 넣으면 바로 전액 출금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뭔가 찜찜했습니다.
인터넷에 앱 이름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검색 결과에 "로맨스 스캠 주의", "가짜 투자 앱 피해" 같은 글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자신이 당한 수법과 똑같은 피해 사례가 수십 건이나 있었습니다. SNS 접근, 감정 형성, 소액 수익 체험, 거액 투자 유도, 출금 차단...
제임스에게 "당신 사기꾼 아니냐"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읽음 표시가 떴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제임스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투자 앱도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상통화까지 했는데... 그 얼굴도, 그 목소리도 전부 가짜였다니."
경찰에 신고한 뒤 알게 된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제임스의 얼굴은 SNS에서 수집한 여러 사람의 사진을 AI 딥페이크로 합성한 것이었고, 영상통화 역시 실시간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였습니다. 목소리조차 AI가 생성한 합성음이었습니다. 수사관은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기업형 범죄조직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AI 딥페이크 로맨스 스캠, 왜 구별이 불가능한가
박 씨의 사례는 2026년 급증하고 있는 AI 딥페이크 로맨스 스캠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5년 로맨스스캠 신고 건수는 2,192건으로 전년 대비 1.7배 증가했고, 피해액은 1,360억원으로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
과거에는 "사진만 보내고 영상통화를 피하면 사기"라는 공식이 통했지만, 이제 AI 기술이 이 공식을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2026년 현재, 사기범들은 실시간 딥페이크 영상통화, AI 음성 합성, 자동 대화 봇까지 동원하여 가상의 인물을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실제로 캄보디아 거점 한 조직은 10일 분량의 연애 시나리오를 사전에 작성하고, 딥페이크로 만든 가상 인물의 혈액형, 학력, 가정환경까지 설정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박 씨를 속인 사기범들의 핵심 수법을 정리했습니다.
- SNS 접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외국인 또는 전문직 종사자로 위장하여 팔로우/친구 요청
- 감정 형성: 매일 꾸준한 메시지로 친밀감을 쌓고, 결혼이나 미래를 약속하며 심리적 유대 형성
- 딥페이크 영상통화: AI 실시간 얼굴 합성 기술로 영상통화까지 가짜로 진행하여 의심 차단
- 소액 수익 체험: 처음에 소액 투자금을 돌려주어 신뢰를 쌓는 미끼 수법
- 거액 유도: 신뢰가 쌓이면 "VIP", "특별 기회" 등을 내세워 큰 금액 투자 유도
- 출금 차단 후 잠적: 피해자가 출금을 요청하면 세금, 보증금 등을 추가로 요구하다 잠적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만난 적 없는 온라인 상대에게 절대 돈을 보내지 마세요
- 영상통화를 했더라도 딥페이크일 수 있습니다. 영상통화만으로 신뢰하지 마세요
- 상대방이 투자나 금전을 언급하는 순간 로맨스 스캠을 의심하세요
- 상대의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확인해보세요
- SNS에서 먼저 말을 건 외국인의 연애 접근에 경계하세요
- 출처 불명의 투자 앱은 절대 설치하지 마세요
- 소액 수익이 나왔다고 거액을 투자하지 마세요. 미끼입니다
- 가족이나 친구에게 상황을 알리고 객관적 조언을 구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즉시 사이버 사기 신고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불법사금융 신고센터에 피해 접수
- 계좌 지급정지: 송금한 은행에 즉시 지급정지 요청 (현행법상 로맨스스캠은 지급정지가 어려울 수 있으나, 최대한 빨리 요청해야 합니다)
- 증거 보존: 대화 내역, 송금 기록, 상대 프로필 캡처 등 모든 증거를 보존하세요
- 투자 앱 삭제: 의심되는 앱은 즉시 삭제하고,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수 있으므로 비밀번호를 변경하세요
- 심리 상담: 로맨스 스캠 피해는 금전적 손실뿐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도 큽니다. 전문 상담을 받으세요
이 사연은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