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시작된 뜻밖의 인연
올해 34세인 박○○ 씨(가명)는 서울의 한 IT 회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야근이 잦고 주말에도 혼자 보내는 날이 많았던 박 씨에게,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으로 한 통의 DM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게시물이 정말 멋져서 팔로우했어요. 혹시 사진 취미로 하시나요?"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싱가포르에서 금융 분석가로 일한다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습니다. 세련된 일상 사진, 여행 사진, 직장 동료들과의 사진까지. 프로필은 완벽하게 일반인처럼 보였습니다. 박 씨는 별 경계심 없이 답장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주말에 사진 찍으러 다니는 걸 좋아해요."
이것이 5천만원을 잃게 될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천천히 쌓인 신뢰, 자연스럽게 시작된 연애
처음 2주간은 정말 평범한 대화였습니다. 좋아하는 음식, 여행지, 일상 이야기. 상대방은 박 씨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했고, 자신의 일상도 꾸준히 공유했습니다. 아침에는 출근길 커피 사진을, 저녁에는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대화는 카카오톡으로 옮겨졌습니다. 영상통화도 몇 차례 했는데, 화면 속 그녀는 프로필 사진과 동일한 인물로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것은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가짜 영상이었습니다.
"자기야, 나 한국 출장 올 수도 있어. 그때 꼭 만나자."
박 씨는 완전히 사랑에 빠졌습니다. 서로 "자기야"라 부르는 사이가 되었고, 매일 밤 잠들기 전 통화를 하며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미래를 위해 같이 투자하자"
교제 2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그녀가 자연스럽게 투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야, 나 회사에서 분석하는 가상화폐 플랫폼이 있는데, 수익률이 정말 좋아. 우리 미래를 위해 같이 투자해볼래? 내가 도와줄게."
박 씨는 가상화폐에 대해 잘 몰랐지만, 금융 전문가인 연인의 말을 신뢰했습니다. 그녀가 보내준 링크로 접속하니, 꽤 그럴듯한 투자 플랫폼이 나타났습니다. 깔끔한 UI, 실시간 차트, 고객센터 채팅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처음이니까 100만원만 넣어봐. 내가 매매 타이밍 알려줄게."
100만원을 입금하자, 일주일 만에 잔고가 13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출금 테스트로 30만원을 빼보니 실제로 통장에 입금되었습니다. 박 씨의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와, 진짜네! 이거 더 넣으면 수익이 더 크겠다."
"맞아, 자기야. 500만원 정도 넣으면 다음 달에 두 배는 될 수 있어. 나도 지금 1억 넣어놨어."
500만원을 추가 입금했고, 화면 속 잔고는 빠르게 불어났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몇 주 만에 1,200만원이 표시되었습니다. 박 씨는 흥분했습니다. 적금을 해약하고, 비상금까지 끌어모아 3,000만원을 추가 입금했습니다.
"이 정도면 한 달 뒤에 1억 가까이 될 수 있어. 우리 그 돈으로 집 계약금 내자."
결국 총 투자금은 5,000만원에 달했습니다.
출금 버튼을 눌렀지만, 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면 속 잔고가 8,500만원을 넘었을 때, 박 씨는 기쁜 마음으로 출금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고객님, 수익금 출금을 위해 세금 15%를 선납해야 합니다. 1,275만원을 입금해 주세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30만원 출금할 때는 이런 절차가 없었는데. 그녀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아, 그건 수익이 일정 금액 넘으면 원래 그래. 나도 냈어. 세금 내면 바로 출금돼."
하지만 박 씨는 더 이상 돈을 보낼 여력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인터넷에 그 플랫폼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검색 결과에 "사기", "먹튀", "로맨스 스캠"이라는 단어가 줄줄이 나왔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패턴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후기가 수십 건이었습니다. 소액 수익을 먼저 보여주고, 큰 돈을 넣으면 출금을 막는 수법. 이른바 '돼지도살(Pig Butchering)' 사기였습니다.
"그 순간 손이 떨리고 숨이 막혔습니다. 1년 넘게 모은 돈이 전부 날아간 겁니다."
그녀에게 "이거 사기 아니야?"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읽음 표시만 뜨고 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삭제되어 있었고, 카카오톡도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투자 플랫폼 사이트도 접속 불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박 씨가 당한 것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돼지도살형 로맨스 스캠'입니다. 핵심 수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SNS 접근: 인스타그램, 틴더, 위피 등에서 매력적인 프로필로 먼저 접근
- 장기 감정 투자: 1~3개월간 매일 대화하며 진짜 연인처럼 행동. 딥페이크 영상통화까지 활용
- 자연스러운 투자 권유: 연애 중 자연스럽게 "우리 미래를 위해" 투자를 권유
- 가짜 플랫폼 유도: 정교하게 만든 가짜 투자 사이트로 유도
- 소액 수익 미끼: 처음에는 실제로 소액 출금이 되게 하여 신뢰를 형성
- 대액 유도: 신뢰가 쌓이면 점점 더 큰 금액을 투자하도록 유도
- 출금 차단 및 잠적: 큰 돈이 들어오면 세금/수수료 명목으로 추가 입금을 요구하거나, 사이트째 폐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2024년 675억원에서 2025년 1,360억원으로 두 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접수 건수도 1,265건에서 2,192건으로 약 1.7배 늘었습니다. 특히 가상화폐 투자를 결합한 '돼지도살' 수법이 전체 로맨스 스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SNS에서 모르는 사람이 먼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면 경계하세요
- [ ] 온라인에서만 만난 사람이 투자를 권유하면 100% 사기를 의심하세요
- [ ] 처음에 소액 수익이 나더라도, 더 큰 금액을 넣으라는 유도에 넘어가지 마세요
- [ ] 투자 플랫폼이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곳인지 반드시 확인하세요
- [ ] 출금 시 세금이나 수수료를 '선납'하라는 요구는 사기의 전형적 수법입니다
- [ ] 영상통화를 했더라도 딥페이크일 수 있습니다. 직접 만나기 전에는 신뢰하지 마세요
- [ ] 투자 결정 전 반드시 가족이나 신뢰할 수 있는 지인에게 상의하세요
- [ ] 의심되면 금융감독원(1332) 또는 경찰(112)에 즉시 확인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돼지도살형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추가 송금 즉시 중단: 세금, 수수료 등 어떤 명목이든 더 이상 돈을 보내지 마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경찰청 사이버수사국(https://ecrm.police.go.kr)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피해 계좌 지급정지 요청)
- 증거 보존: 채팅 내역, 프로필 캡처, 송금 내역, 투자 플랫폼 화면 모두 저장
- 해당 SNS 플랫폼 신고: 사기범의 계정을 인스타그램 등에 신고
2026년 1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딥페이크를 활용한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 조직의 총책 부부가 검거되어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같은 달 한국인 73명이 캄보디아에서 강제 송환되었으며, 대부분 로맨스 스캠 등 사기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부도 해외 범죄 조직에 대한 국제 공조 수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당했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돼지도살형 로맨스 스캠은 수개월에 걸쳐 정교하게 설계된 조직 범죄입니다. 처음에 실제 수익을 보여주는 치밀함 때문에, 금융 전문가조차 속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인지한 즉시 행동하는 것입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 신고하세요.
이 사연은 2025~2026년 실제 보도된 로맨스 스캠 및 돼지도살 사기 피해 사례들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과 일부 각색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