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걸려온 딸의 전화
올해 62세인 박 씨(가명)는 서울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남편과 둘이 사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딸 하나가 자랑이었고, 매일 퇴근 후 딸과 통화하는 것이 그녀의 낙이었습니다.
2026년 2월 중순, 평일 오전 11시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린 것은 딸의 울음섞인 목소리였습니다.
"엄마... 나 지금 큰일 났어... 교통사고가 났는데... 사람이 많이 다쳤어..."
박 씨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딸의 목소리였습니다. 말투, 억양, 심지어 울 때 숨을 들이쉬는 습관까지 똑같았습니다.
완벽하게 복제된 목소리
울음을 삼키며 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엄마, 상대방이 많이 다쳤대... 지금 합의를 안 하면 나 구속된다고 해... 변호사 선생님이 전화 바꿔줄 테니까 말씀 들어..."
곧이어 차분하고 권위 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어머니, 저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최입니다. 따님이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치어 전치 12주 중상해가 발생했습니다. 피해자 측에서 합의 의사가 있으나, 오늘 안에 합의금 2,800만원을 지급하지 않으면 구속 수사로 전환됩니다."
박 씨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딸이 감옥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지금 바로 은행에 가셔서 합의금을 이체해주시면 됩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주세요. 그리고 이 건은 수사 중이라 남편분이나 다른 분께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따님 형사 처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의심할 틈 없이 진행된 송금
박 씨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사기범은 전화를 끊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딸의 목소리로 바뀌어 "엄마 빨리 해줘... 무서워..."라며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2,800만원을 이체할 때, 은행 직원이 "혹시 보이스피싱 아니신지 확인해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딸의 흐느끼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제 딸 일이에요. 급해요."
송금을 완료한 뒤, 사기범은 "잘 처리하겠습니다. 따님 걱정 마세요"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진짜 딸의 전화, 무너진 세계
2시간 뒤, 딸에게서 평소처럼 점심시간 안부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점심 뭐 먹었어?"
"지은아! 괜찮은 거야? 사고는 어떻게 됐어?"
"사고? 무슨 사고?"
딸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정상적으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박 씨는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정말 너였어... 우는 소리까지 똑같았는데..."
경찰에 신고한 후 알게 된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사기범들은 딸이 SNS에 올린 짧은 영상들에서 음성을 추출하여, AI 음성 합성 기술로 딸의 목소리를 복제한 것이었습니다. 30초 분량의 음성만 있으면 톤, 말투, 감정 표현까지 거의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범죄에 악용된 것입니다.
이체된 2,800만원은 즉시 여러 대포통장으로 분산된 후 해외로 빠져나갔고, 회수는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박 씨를 속인 사기범들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AI 딥페이크 보이스피싱'의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2025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사상 최대 1조 2,578억원을 기록했으며, AI 기술을 악용한 신종 수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 AI 음성 복제: SNS, 유튜브 등에 공개된 30초~1분 분량의 음성으로 특정인의 목소리를 거의 완벽하게 복제합니다.
- 감정 조작: 울음, 공포, 급박함 등 감정이 담긴 음성까지 합성하여 판단력을 흐립니다.
- 긴급 상황 연출: 교통사고, 납치, 폭행 등 즉각적인 금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을 만듭니다.
- 전문가 사칭 연계: 변호사, 경찰, 의사 등이 번갈아 전화를 받으며 신뢰도를 높입니다.
- 고립 유도: "수사 중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주변 확인을 차단합니다.
- 시간 압박: "오늘 안에", "지금 당장" 등 급박함을 강조하여 냉정한 판단을 방해합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 ] 가족에게서 급전 요청 전화가 오면, 전화를 끊고 직접 가족에게 다시 전화하세요
- [ ] 가족 간 비밀 암호(어릴 때 별명, 특정 질문)를 미리 정해두세요
- [ ] SNS에 음성이 포함된 영상 게시를 자제하거나 공개 범위를 제한하세요
- [ ]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요구는 100% 사기입니다
- [ ] 변호사, 경찰이 전화로 합의금 송금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 ] 은행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면 반드시 한 번 더 확인하세요
- [ ] AI 딥페이크 탐지 앱(SKT 에이닷 등)을 설치하세요
- [ ] 의심스러운 전화는 녹음 후 경찰청 112로 신고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사기 피해를 당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즉시 신고
- 계좌 지급정지: 송금한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사기범 계좌 지급정지 요청
- 금융감독원 신고: 1332에 전화하여 피해 사실 접수
- 증거 보존: 통화 내역, 문자, 송금 내역 등 모든 자료 캡처 및 저장
- 피해 구제 신청: 경찰 사건접수 확인서를 받아 은행에 피해 환급 신청
국민은행과 LG유플러스는 2026년 MWC에서 AI 기반 보이스피싱 실시간 대응 체계를 발표했으며, 통화 중 AI가 실시간으로 딥페이크 음성을 탐지하는 기술이 곧 상용화될 예정입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급한 돈 요청에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입니다.
이 사연은 2026년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 유형과 경찰청, 금융감독원 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