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유튜브, 그 댓글 하나가 시작이었다
올해 42세인 박○○ 씨(가명)는 내과 전문의다. 매일 밤 진료를 마치고 유튜브로 재테크 콘텐츠를 즐겨 봤다. 구독자 수십만 명을 거느린 주식 전문 유튜버의 영상이었다.
어느 날 밤, 영상 댓글란을 내리던 그의 시선이 멈췄다.
"저는 여기서 배워 석 달 만에 수익률 38% 달성했어요. 전문가 1:1 상담 받아보세요 → [링크]"
댓글 아래에는 "저도요", "진짜 대박이에요" 같은 동의 댓글이 수십 개 달려 있었다. 박 씨는 별 생각 없이 링크를 눌렀다.
밴드방에서 쌓인 한 달의 신뢰
링크는 카카오톡 채널로 연결됐다. 상담사를 자처한 사람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지금 투자에 관심 있으신가요? 저희 전문가 밴드방에 초대해 드릴게요. 한 달간 무료로 시장 분석 정보를 제공합니다. 비용은 전혀 없습니다."
밴드방에 들어가자 매일 아침 7시, 코스피·코스닥 종목 분석 리포트가 올라왔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운영자는 전날 예측이 적중할 때마다 인증 화면을 올렸다. 회원들은 "오늘도 감사합니다", "역시 선생님"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박 씨도 조언을 따라 소액으로 직접 주식을 사봤다. 신기하게도 두 번 연속 수익이 났다. 의심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운영자가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박 선생님은 감각이 있으세요. 저희가 운영하는 전용 증권 플랫폼을 안내해 드리고 싶습니다. 일반 증권사보다 훨씬 빠른 체결 속도와 독점 정보를 제공합니다."
수익이 쌓이는 화면, 그러나 전부 허상이었다
운영자가 보내준 링크로 앱을 설치했다. 앱 화면은 실제 증권사 앱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로그인하자 종목 차트와 잔고 화면이 보였다.
처음엔 500만 원을 입금했다. 운영자가 알려준 종목을 앱에서 매수하자 사흘 만에 잔고가 680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박 씨는 화면 속 숫자를 보며 손이 떨렸다.
"이 정도면 진짜네. 병원 수입보다 낫겠는걸."
추가 입금 요청이 왔다. 2,000만 원, 그다음엔 5,000만 원. 앱 안에서 수익률은 계속 올라갔다. 누적 잔고는 어느새 1억 2,000만 원을 넘겼다. 박 씨는 부동산 담보 대출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앱 화면 속 숫자는 처음부터 조작된 것이었다. 입금된 돈은 실제 주식을 사는 데 쓰이지 않았다. 서버가 표시하는 잔고와 수익률을 사기단이 마음대로 바꿔 보여준 것이었다.
출금 버튼을 눌렀을 때, 모든 것이 멈췄다
투자를 시작한 지 세 달째 되던 날, 박 씨는 수익 일부를 출금하기로 했다. 앱에서 '출금 신청' 버튼을 눌렀다.
처리 중이라는 메시지만 뜰 뿐, 돈은 나오지 않았다. 운영자에게 연락했다.
"세금 정산을 먼저 해야 출금이 가능합니다. 수익의 15%를 먼저 납부해 주세요."
이상했다. 증권 거래에서 세금은 계좌에서 정산하는 것이지, 먼저 현금으로 내는 법이 없다. 박 씨는 거절했다. 그러자 운영자의 답변이 뚝 끊겼다. 며칠 뒤엔 연락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앱도 실행되지 않았다.
전문직도 예외는 없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사기 조직은 캄보디아에 콜센터를 두고 활동한 국제범죄단이었다. 유명 주식 유튜버 채널 여러 곳의 댓글창에 조직적으로 '전문가 상담 URL'을 올려 피해자를 밴드방으로 끌어들였다.
1개월간의 '무료 정보 제공' 기간 동안 신뢰를 쌓은 뒤, 가짜 증권 앱 설치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앱 내 잔고와 수익률은 사기단이 서버에서 직접 조작했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2년간 피해자는 59명, 피해액은 약 99억 원에 달했다. 피해자 명단에는 의사, 세무사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다수 포함됐다.
"제가 의대를 나온 사람인데, 이렇게 당할 줄 몰랐습니다. 앱 화면에 수익이 찍혀 있는데 어떻게 의심하겠어요."
박 씨가 잃은 돈은 7,500만 원이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이 사기의 특징은 피해자가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점이다.
- 유튜브 댓글 위장: 실제 이용자처럼 보이는 댓글로 접근한다. 좋아요 수와 동의 댓글도 조직이 만든 것이다
- 무료 기간으로 신뢰 확보: 1개월간 비용 없이 정보를 제공해 경계심을 낮춘다
- 소액 성공 경험 유도: 일반 증권사 계좌로 소액 수익을 먼저 경험하게 해 신뢰를 완성한다
- 가짜 앱 설치 유도: 정교하게 만든 가짜 증권 앱을 설치시킨다. 잔고와 수익률은 서버에서 임의로 조작된다
- 출금 시 잠적: 출금 요청이 들어오면 '세금 선납' 등 명목으로 추가 금액을 요구하거나 곧바로 연락을 끊는다
예방 체크리스트
- [ ] 유튜브·SNS 댓글의 투자 상담 링크는 클릭하지 마세요. 조직적으로 심어놓은 것일 수 있습니다
- [ ] 공식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애플 앱스토어)에 없는 앱은 설치하지 마세요. 링크로 직접 배포하는 앱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 ] 금융투자업자 여부를 금감원 홈페이지(fine.fss.or.kr)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미등록 업체는 불법입니다
- [ ] 앱 화면의 수익 숫자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습니다. 출금이 실제로 되는지 먼저 소액으로 테스트하세요
- [ ] 출금을 위해 '세금 선납'을 요구하면 100% 사기입니다. 정상 증권사는 출금 전 세금을 현금으로 요구하지 않습니다
- [ ] 고수익 투자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은 반드시 의도가 있습니다. 공짜 호의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 [ ] 전문직·고학력자도 동일하게 당합니다. 지식이 아닌 심리적 신뢰를 공략하기 때문입니다
- [ ] 투자 결정 전 반드시 가족이나 지인에게 먼저 알리세요. 사기범은 항상 비밀을 강요합니다
피해를 당했다면
피해 사실을 확인한 즉시 아래 순서대로 행동하세요.
- 경찰 신고: 112 또는 사이버범죄 신고 포털(ecrm.police.go.kr)
- 금융감독원 신고: 1332 (불법금융신고센터)
- 계좌 지급정지: 송금한 계좌 은행 고객센터에 즉시 신청
- 증거 확보: 앱 화면 캡처, 대화 내역, 입금 내역, 상대방 연락처를 모두 저장
- 2차 사기 주의: '피해금 환수를 도와준다'는 추가 연락은 반드시 거절하세요. 동일 조직의 2차 사기입니다
이 사건은 2026년 6월 경찰이 국내 조직원 다수를 검거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다. 캄보디아 현지 콜센터 조직원에 대한 추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사연은 MBC뉴스·파이낸셜뉴스 2026년 6월 11일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일부 내용을 각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