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준비하던 평범한 자영업자
박○○ 씨(가명, 52세)는 포항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몇 해 전부터 노후 자금을 조금이라도 불려보려고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 날, 자주 드나들던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에서 낯익은 얼굴의 게시글을 봤다. 방송에서 여러 번 본 적 있는 유명 주식 전문가의 이름과 사진이 걸린 글이었다.
"제가 직접 운용하는 소수 회원 전용방입니다. 투자금의 580%까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박 씨는 반신반의했지만, 일단 무료 리딩방에 들어가 지켜보기로 했다.
점점 커지는 믿음
리딩방 운영진은 매일 그럴듯한 종목 추천과 수익 인증 캡처를 올렸다. 몇 주가 지나자 박 씨의 의심은 조금씩 옅어졌다.
어느 날 리딩방 관리자가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신을 증권사 직원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님 자금을 저희가 직접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운용해드릴게요. 계좌이체는 흔적이 남아서 세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현금이나 골드바로 준비해주시면 저희 직원이 직접 찾아뵙고 수거해가겠습니다."
박 씨는 순간 의아했다. 하지만 상대는 정식 증권사 직원증이라며 사진을 보내왔고, "요즘 큰손 고객들은 다 이렇게 자산 관리를 받는다"고 안심시켰다. 계좌이체보다 오히려 "더 안전하고 은밀한 방법"이라는 설명에 박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금과 골드바를 건네다
며칠 뒤, 박 씨는 은행에서 현금을 찾고 금은방에서 골드바까지 마련했다. 지정된 시간, 포항 시내 한 카페 근처에서 낯선 남성이 다가왔다.
"증권사에서 나왔습니다. 안전하게 보관해서 수익 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남성은 신분증도, 명함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채 서류 봉투를 받아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박 씨는 찜찜했지만, 리딩방에서 여러 번 오간 대화와 캡처된 '증명서'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후에도 조직은 "추가 투자금을 넣어야 기존 수익률이 유지된다"며 두 차례 더 현금 전달을 요구했다. 박 씨가 건넨 돈과 골드바를 합치면 수천만 원에 달했다.
연락이 끊긴 순간
몇 주 뒤부터 리딩방 관리자의 응답이 뜸해졌다. 수익 인증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박 씨가 수익금 지급을 문의하자 돌아온 답은 침묵뿐이었다.
박 씨는 뒤늦게 해당 증권사 대표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봤다.
"저희 직원 중에는 그런 이름을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고객을 직접 찾아가 현금을 수거하는 서비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제야 박 씨는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계좌이체가 아니었기에 더 늦은 대응
경찰 조사 결과, 박 씨와 같은 방식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5명, 피해액은 현금과 골드바를 합쳐 약 5억 9천여만 원에 달했다. 사건은 5월 말부터 6월 중순 사이, 모두 포항 일대에서 벌어졌다.
이 사건이 유독 뼈아팠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계좌로 돈이 송금됐다면 은행에 즉시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금과 골드바는 대면으로 건네는 순간 이미 조직의 손에 넘어갔고, 수거책은 곧바로 퀵서비스 등을 이용해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금융권의 어떤 보호 장치도 작동할 틈이 없었다.
경찰은 피해자의 제보를 받고 8시간 잠복 끝에 현금을 수거하러 나온 조직원 2명을 현장에서 붙잡았다. 이후 CCTV 분석을 통해 도주한 나머지 2명도 추가로 검거해, 총 4명 중 1명이 구속됐다.
남은 것은 텅 빈 통장뿐
박 씨는 평생 모아온 노후 자금의 상당 부분을 되찾지 못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미 현금화된 실물자산은 계좌 이체와 달리 흐름을 추적하기가 훨씬 어렵다.
박 씨는 이렇게 말했다.
"계좌로 보냈으면 은행에서라도 막아줬을 텐데... 현금이랑 금을 직접 건넨 게 가장 후회됩니다."
전문가를 사칭한 리딩방, '안전 보관'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그리고 대면으로 이뤄지는 현금·실물자산 거래. 이 세 가지가 겹치면 어떤 투자 권유도 일단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