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실패가 반복되던 어느 날
올해 26세인 이씨(가명)는 지방 소재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00통이 넘는 이력서를 넣었지만 면접까지 간 건 고작 네 번.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라 생활비를 보태기 어려웠고, 이씨는 편의점 야간 알바로 월세와 식비를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습니다. 통장 잔고가 30만원 아래로 떨어진 어느 날 밤, 인스타그램 DM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재택 가능한 간단한 송금 업무 알바 모집 중입니다. 일당 30만원, 하루 1~2시간이면 충분해요. 경력 무관, 스마트폰만 있으면 됩니다. 관심 있으시면 텔레그램으로 연락 주세요."
일당 30만원. 편의점에서 밤새 일해도 7만원이 안 되는데, 1~2시간에 30만원이라니. 이성적으로는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빈 통장을 들여다보는 손이 떨렸습니다.
텔레그램에서 시작된 '업무 교육'
텔레그램으로 연락하자, '팀장님'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친절하게 응대했습니다.
"저희는 해외 무역회사의 국내 정산 대행 업무를 하고 있어요. 해외에서 들어오는 대금을 지정된 계좌로 분산 이체하는 간단한 업무입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어요. 계약서도 보내드릴게요."
'팀장님'은 실제로 사업자등록증 사본과 업무 계약서 파일까지 보내왔습니다. 물론 모두 위조된 것이었지만, 이씨에게는 꽤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일단 시범으로 한 건만 해보세요.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시면 됩니다."
첫 번째 업무는 간단했습니다. 이씨의 통장에 150만원이 입금되었고, '팀장님'이 알려준 다른 계좌로 그 돈을 보내면 끝이었습니다. 이체를 완료하자 5분 만에 이씨의 계좌에 10만원이 '수수료'로 입금되었습니다.
"와, 진짜 들어온다."
그 순간, 이씨의 경계심이 무너졌습니다.
수수료는 올라가고, 의심은 사라지고
다음 날부터 업무량이 늘었습니다. 하루에 2~3건, 건당 200만원에서 500만원이 이씨의 통장을 거쳐 갔습니다. 수수료도 건당 15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일주일 만에 이씨의 통장에는 100만원 넘는 수수료가 쌓였습니다.
'팀장님'은 이씨에게 수시로 칭찬과 격려를 보냈습니다.
"이씨, 업무 처리가 정확하고 빨라서 VIP 파트너로 승급시켜 드릴게요. 다음 주부터 수수료가 건당 20만원으로 올라갑니다."
혹시 몰라 인터넷에 '송금 대행 알바'를 검색해봤지만, '팀장님'이 미리 손을 썼습니다.
"인터넷에 사기라는 글이 많은데, 그건 불법 업체 얘기예요. 저희는 정식으로 등록된 곳이니 걱정 마세요. 실제로 사업자등록증도 보여드렸잖아요."
이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미 100만원 넘게 벌었으니, 이 일이 사기일 리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어느 날 찾아온 경찰
2주째 되던 날 오후, 이씨의 원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자, 사복 차림의 형사 두 명이 서 있었습니다.
"이씨 본인 맞으시죠? 서울 강남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입니다. 귀하의 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이른바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에 사용된 혐의로 수사 중입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무역 대금 정산 업무를 한 것뿐인데요."
형사는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이씨 통장으로 입금된 돈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입니다. 60대 어르신이 검찰 사칭 전화에 속아 보낸 2,300만원, 30대 직장인이 투자 사기로 잃은 1,500만원... 이 돈들이 이씨의 계좌를 거쳐 사기 조직으로 흘러갔습니다."
이씨의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자신이 '알바'라고 생각했던 일이, 다른 사람의 전 재산을 빼앗는 범죄의 한 축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몰랐어요. 사기인 줄 몰랐어요..."
하지만 법적으로 '몰랐다'는 것은 완전한 면죄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사기 방조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되었고, 통장은 즉시 동결되었습니다. 그동안 받은 수수료는 모두 범죄 수익금으로 분류되어 환수 대상이 되었습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삶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수백만원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야 했고, 전과 기록이 남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자신의 통장을 거쳐 간 돈의 주인들이 겪었을 고통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60대 할머니가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2,300만원이었대요. 그 돈이 제 통장을 지나갔다는 사실이... 밤마다 잠을 못 잡니다."
이씨의 사건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SNS 송금 알바' 사기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이 유형의 사기로 적발된 '알바생'만 4,200명이 넘으며, 이 중 80% 이상이 20~30대 청년층이었습니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이씨를 덫에 빠뜨린 사기 조직의 핵심 수법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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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 고수익 제안: 일당 30만원, 월 500만원 등 시장 임금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보수를 내세워 경계심을 무너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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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등 익명 메신저 유도: 카카오톡이 아닌 텔레그램, 시그널 등 추적이 어려운 메신저로 소통을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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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서류로 합법성 위장: 사업자등록증, 계약서 등을 위조하여 정식 업체인 것처럼 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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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소액 성공 경험: 처음에는 실제로 수수료를 지급하여 신뢰를 쌓은 뒤, 점차 규모를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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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대여 유도: '송금 대행'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의 통장을 범죄 자금 세탁에 이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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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고립: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하거나, 검색해봐도 문제없다고 미리 세뇌합니다.
피해 예방 체크리스트
- 자신의 통장에 남의 돈을 받아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은 100% 자금세탁입니다
- '송금 대행', '결제 대행', '정산 대행' 알바는 모두 범죄입니다
- 일당 30만원 이상의 비현실적 고수익 알바는 반드시 의심하세요
- 텔레그램, 시그널 등 익명 메신저로만 소통하는 업체는 사기입니다
- 위조된 사업자등록증은 국세청 홈택스(hometax.g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처음 돈을 실제로 준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됩니다. 신뢰를 쌓는 사기 수법입니다
- 취업에 자신의 통장이나 개인정보를 제공하라는 요구는 절대 거절하세요
- 의심되면 고용노동부 1350, 경찰청 112에 먼저 확인하세요
피해를 당했다면
이미 '송금 알바'에 가담했다면, 즉시 다음 조치를 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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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중단: 더 이상의 송금 업무를 멈추세요. 계속할수록 법적 책임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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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자진 신고: 112 또는 가까운 경찰서에 자진 신고하세요. 자진 신고 시 형이 감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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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보존: 텔레그램 대화 내역, 입금/출금 내역, '팀장'의 연락처 등을 캡처하여 보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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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지급정지: 은행 고객센터에 연락하여 추가 범죄 이용을 차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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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상담: 대한법률구조공단(132)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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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신고: 1332에 피해 사실을 접수하세요.
이 사연은 2026년 실제 보도된 SNS 송금 알바 사기 사례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과 일부 각색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