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근로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
베트남 껀터시에는 한국의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통해 출국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농촌에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다들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이들 앞에 나타난 사람이 N씨(여성, 1988년생, 껀터시 거주)였다. N씨는 한국 출국에 필요한 서류 처리와 절차를 대행해줄 수 있다며 접근했다.
N씨는 약 3~4개월이면 한국으로 출국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한국, 말레이시아, 중국, 두바이, 태국, 캄보디아 등을 여러 차례 오간 자신의 이력도 내세웠다. 해외 출국 절차에 밝은 사람처럼 보이자, 사람들은 하나둘 마음을 열었다.
"일부만 먼저 내면 된다"는 말
이 사례를 대표해 가상의 인물을 하나 세워본다. 레티빈 씨(가명)도 한국행을 준비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N씨는 1인당 5,500만동(약 285만원)을 전체 비용으로 제시했다. 다만 처음부터 전액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2,000만~3,000만동(약 103만~206만원)만 먼저 내면, 나머지는 한국 도착 후 내면 된다고 했다.
부담을 덜어주는 듯한 이 조건에, 레티빈 씨를 비롯한 사람들은 의심 없이 돈을 건넸다. 전액이 아니라 일부만 낸다는 사실이 오히려 경계심을 낮췄다.
이렇게 모인 11명의 선지급금을 모두 합치면 2억 6,400만동, 한화로 약 1,370만원에 달했다.
서류도, 절차도 없었다
그러나 N씨는 어떤 서류도, 어떤 출국 절차도 진행하지 않았다. 돈만 받았을 뿐 실제로 한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출국 소식은 오지 않았다. 문의는 늘어났지만 대답은 점점 모호해졌다. 결국 N씨는 받은 돈을 개인 용도로 쓴 뒤 베트남을 떠나 두바이로 향했고, 피해자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두바이로 잠적했다가 붙잡히기까지
N씨가 피해자들에게 출국 비용을 설명한 것은 2024년 4월쯤이었다.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은 수사기관은 증거를 확보하며 N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껀터시 공안은 N씨가 베트남으로 들어올 예정이라는 사실을 파악했고, 관계 기관과 공조해 N씨가 입국하자 공항에서 신병을 확보했다. 이어 2026년 9월 12일 N씨를 사기 및 재산 편취 혐의로 입건해 구속했다. 기소 여부와 재판 일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N씨는 현재 구속된 채 수사를 받고 있다.
왜 이 먼 나라의 사건에 주목해야 할까
이 사건은 한국 땅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농어촌 인력난으로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이런 브로커 사기로 출국이 무산된 인력 공백은, 결국 한국의 농가와 어촌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서류와 출국 절차를 대신 처리해주겠다"며 선입금을 받는 수법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워킹홀리데이, 해외 취업, 유학을 위해 브로커나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한국인들도 같은 구조의 사기에 노출될 수 있다. 최근 한국인을 겨냥한 해외 취업사기와 감금 피해도 늘고 있다.
계절근로자 제도처럼 공식 정부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제도가 합법이어도, 그 제도를 이용해주겠다며 접근한 개인 브로커에게 돈을 먼저 건네는 순간 위험은 시작된다.
껀터시 공안은 해외 취업 과정에서 "서류를 처리해주겠다"거나 "출국을 보장한다"며 선입금을 요구하는 사례를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돈을 받는 개인이나 기관의 법적 자격과 업무 능력은 물론, 해외취업 업무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곳인지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만 먼저 내면 된다는 말도, 절차를 대신 처리해주겠다는 말도 결국 확인되지 않은 개인에게 돈을 보내게 만드는 장치였다. 국적과 목적지가 달라도,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선입금 요구 앞에서는 언제나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