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에게 걸려온 솔깃한 제안
정승호 씨(가명, 54세)는 15년째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해왔다.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수주가 줄었고, 밀린 자재비와 직원 월급으로 마이너스 통장 한도까지 다 채운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알고 지내던 지인이 솔깃한 제안을 전해왔다.
"수도권에 상가 분양하는 건인데, 명의만 잠깐 빌려주면 됩니다. 실제로 돈 낼 필요 없어요. 서류 몇 장에 도장만 찍으면 사례비도 챙겨드려요."
정 씨는 귀가 솔깃했다. 자신이 진짜 상가를 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분양받은 사람' 명의만 빌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대출금도 본인이 갚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시행사에서 알아서 다 처리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던 말
며칠 뒤 브로커가 가져온 서류는 제법 그럴듯했다. 상가 분양계약서, 계약금을 납부했다는 확인서, 신분증 사본까지 절차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정 씨는 실제로 계약금을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서류에는 이미 수천만 원을 납부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브로커는 "은행 심사용 서류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렇게 정 씨의 이름으로 은행에 시설자금 대출이 신청됐다. 담보는 그가 명의만 빌려준 수도권 상업용 부동산이었다. 대출금은 정 씨의 통장을 스쳐 지나가듯 시행사 측 계좌로 넘어갔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약속받은 사례비뿐이었다.
그 사이, 경찰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정 씨처럼 이름을 올린 사람은 혼자가 아니었다. 시행사와 브로커는 이런 '명의상 수분양자' 12명을 앞세워, 허위 분양계약서와 위조된 계약금 납부자료로 IBK기업은행에서 시설자금 대출을 잇달아 받아냈다.
2025년 9월 24일, 인천경찰청은 구체적인 사기 혐의와 대출 금액까지 적시한 압수수색영장을 기업은행에 보냈다. 은행은 다음 날인 9월 25일 이 영장을 접수했다.
그런데 은행이 실제로 사고를 파악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난 10월 2일이었다. 영장을 받고도 곧바로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사고를 인지한 지 3주 가까이 지난 10월 24일, 기업은행은 경기 남양주의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시설자금 19억원을 추가로 대출해줬다. 자체 점검에서도 두 차례나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였다.
182억원, 은행권 사상 최대 미회수 손실
이렇게 12명의 명의상 차주 앞으로 실행된 대출은 모두 14건, 총 244억 6천만원에 달했다. 이 중 회수된 금액은 62억 3,900만원뿐이었다. 나머지 182억 2,100만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은행권에서 이런 '작업대출' 사고로 발생한 미회수 손실로는 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정 씨에게 남은 것은 사례비 몇 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실행된 거액의 대출이 고스란히 갚아야 할 빚으로 되돌아왔다. 위조 서류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사기 사건의 조사 대상이 되어야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수사
인천경찰청은 이 사건을 계속 수사하고 있다. 시행사와 브로커, 그리고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의 책임이 각각 어디까지 인정될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은행이 압수수색영장을 받고도 한 달 가까이 사고를 알아차리지 못한 경위, 그리고 인지한 뒤에도 추가 대출을 내준 경위에 대해서도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의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대출이 정상적이라는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 사건은 보여준다.
이런 수법을 조심하세요
- 명의대여 유혹: "이름과 서류만 빌려주면 사례비를 주겠다"며 명의상 매수인·차주를 모집
- 서류 위조: 실제로 내지 않은 계약금을 낸 것처럼 꾸민 허위 계약서와 입금 확인서 작성
- 명의만 빌린 고액 대출: 명의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 유도해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을 실행
- 책임 전가: 실제 자금은 시행사·브로커가 관리하고, 상환 책임과 형사 책임은 명의인에게 떠넘김
- 금융기관의 뒤늦은 대응: 경찰의 수사 통보를 받고도 신속히 사고를 인지하지 못해 피해가 확대됨
피해를 당했다면
명의대여를 이미 했거나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면 다음과 같이 대응해야 한다.
- 즉시 거절·상담: 명의대여 제안은 단호히 거절하고, 이미 서명했다면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신고센터(1332)에 상담
- 경찰 신고: 112 또는 관할 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 신고
- 서민금융 상담: 급전이 필요하다면 서민금융진흥원(1397)의 합법적 지원 상품을 먼저 확인
- 법률 지원: 대한법률구조공단(132)에서 명의대여에 따른 법적 책임 범위를 상담
이 사연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인물과 세부 정황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되었습니다.